인터로케이션:::서로 길목이 되어라

지난 촛불시위 때 대형마트들은 우리에게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이 검증되고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될 때까지 그소고기 판매를 재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말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어제 언론을 통해 내일부터 동시에 미국산 소고기 판매를 재개하겠노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처럼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이 새로이 검증된 사실이 있었는가? 또 국민들에게 미국산 소고기를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단 말인가?


“자본에는 수익을 노동자에 일자리를 사회에는 기업을”
골든브릿지는 기업 구조조정·인수합병·기업공개 같은 비은행 금융업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해온 토종 금융업체다.작지만 야심만만한 골든브릿지는 어떤 기업인가.
[93호] 2009년 06월 22일 (월) 11:45:17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금융업체들도 대기업과 부유층 고객을 좋아한다. 그런데 골든브릿지의 주요 고객은 ‘노병사(老病死) 기업’. 즉 ‘늙어 쇠약하고 곧 숨이 넘어갈’ 위기의 업체이다. 이런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고 컨설팅하고 효율화해서 ‘잘나가는 기업’으로 바꿔놓는 것이 골든브릿지의 주요 업무다. 상호인 골든브릿지(Goldenbrid ge)는 사면초가에 처한 조직(노병사 기업)의 유일한 퇴각로, 즉 ‘돌파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골든브릿지는 자선가가 아니고, 수익 모델도 분명하다. ‘노병사 기업’은 주식가치가 저평가되어 있을 것이므로 골든브릿지 처지에서는 매우 저렴하게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다. 해당 업체를 정상화해 기업가치를 올리는 데 성공한다면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수익 모델이 작동하려면, 주식시장이 어느 정도 발전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의 소유권)을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이 한국에 갖춰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추진된 급격한 자본시장 자유화 및 개방 조처 때이다. 2000년 전후에는, 이런 급진적 조처에 한국인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틈을 타고, 해외 금융업체들이 한국 기업을 사고팔면서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국 업체들만 날뛰었던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 홀연히 명함을 내민 것이 바로 골든브릿지였다.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금융시장

2000년 4월에 설립한 골든브릿지는 기업 구조조정 회사로서 프로칩스·크라운제과·삼익악기·벽산건설·뉴코아 등 기업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 업무 50여 건을 추진해왔다. 골든브릿지는 방송·통신기기 제조업체인 프로칩스에 2001년 11월 105억원을 투자해 297억원을 회수했다. 수익률은 183%. 삼익악기의 경우에도 2001년 12월에 100억원을 투자했는데 다음 해 10월에 181억원을 회수해 81.4%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자산 5조원, 종업원 2만명에 달하는 50여 개 부실기업을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통해 회생시켰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업 구조조정 업무는 자칫 매우 약탈적일 수 있다. 골든브릿지의 전신 중 하나인 브릿지증권은 해외 투기자본에 의해 문자 그대로 거덜 날 뻔했던 경우다. 해외 사모펀드인 BIH는 1998년 즈음 브릿지증권에 2000억여 원을 투자해 지분 87%를 매입한다. 이 같은 절대적 소유자이자 경영자로서 BIH가 한 일은 브릿지증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여서 돈을 빼내는 일이었다. 즉, 자본금 4500억원을 2000억원으로 감자(減資)해서 남는 2500억원, 회사 보유 부동산과 사옥을 매각한 돈 등을 주주에게 배분했다. 그리고 주주 중 대다수(87%)는 BIH였다. 노동자는 820명에서 210명으로, 지점은 40개에서 9개로 줄였다. 이렇게 껍데기만 남았던 브릿지증권은 2005년 골든브릿지에 인수된 이후, 이 금융그룹의 중심적 기업인 골든브릿지투자증권으로 발전했다.

작지만 강한 금융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이 최근 주력하는 업무는 유망하지만 시장에서 저평가되었거나, 아직 평가되지 않은(비상장) 중소기업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런 유망 기업에 직접 투자하거나, 투자자를 찾아 연결해주고, 비상장 기업의 경우에는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IPO(기업 공개, 기업의 상장을 지원하는 업무)를 추진한다. 이런 노력이 최근에는 해외시장 개척으로 발전하고 있다. 베트남 증권사를 인수하는 한편 ‘해외 IPO’를 성사시켰다. 미국의 유통업체인 뉴프라이드가 한국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주간사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국내 증시에 미국 기업 상장을 성사시킨 국내 최초의 사례이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역동성은 실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자기자본도 2006년 1000억원 수준에서 17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금융권의 최대 수난기였던 지난해에도 흑자를 냈다. 그러나 골든브릿지의 최대 약점은, 자본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기업의 경쟁력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자본 규모라는 점에서 이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금융 선진국에도 소규모 금융업체(금융 부티크)가 전문화된 능력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경우는 많다. 더욱이 금융기관의 대형화 추세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꺾이는 추세다. 골든브릿지가 작지만 강한 금융기업으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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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존중한 생산 책임을 동반한 소비
프랑스에서 지역 농부와의 직거래로 농부를 돕고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받는 대안적 소비인 아마프 운동이 널리 퍼지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소비하는 삶’인 아마프 운동의 현장을 취재했다.
[94호] 2009년 06월 29일 (월) 11:52:34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소비가 미덕인 시대가 있었다. 풍요로운 시대는 필요에 의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를 위한 소비를 조장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가 지구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경제 위기가 닥쳐오면서 소비를 새롭게 성찰하기 시작했다. 이제 단순히 소비하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잘 쓰는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프랑스의 ‘아마프 운동’은 지역 농부와의 직거래로 농부를 돕고 신선한 농산물을 그 대가로 받는 대안적인 소비 운동이다.

   
아마프 운동으로 선 장에 나온 채소는 비뚤어진 호박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길 한 모퉁이에 30여 명이 웅성거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다. 약속 시간 6시를 넘기고 30분이 지났기 때문이다. 얼마 후 기다리던 트럭이 도착했다. 트럭 안에는 갖가지 채소를 담은 상자가 가득했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채소 상자를 하나씩 나르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얼굴이 검게 그을린 중년 남자가 눈에 띄었다. 한눈에도 그가 농사꾼임을 알 수 있었다. 장 뤽 바스티앙 씨다. 그는 파리에서 140km 떨어진 파리 북쪽 지역 보베 근처에 사는 농부로 매주 이곳으로 직접 재배한 채소를 보급한다. 오늘 배급할 채소는 가지 샐러드 호박 근대 오이 양배추 등이다. 그런데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규격화되고 미끈하게 잘빠진 형상이 아니다. 삐뚤하고 제멋대로 자란 채소의 모양이 오히려 파리지엔에게는 신기한 볼거리다.

   
채소 상자를 골목 모퉁이에 일렬로 세우자 순식간에 작은 시장이 들어선 것 같다. 상자를 옮기던 사람들은 이제 각자 준비한 시장 바구니에 채소를 담기 시작한다. 이들은 파리 20구의 멜리몽탕의 아마프(AMAP) 회원이다.

아마프는 지역 농민을 지원하기 위한 협회다. 협회는 대형화·산업화한 농업 구조에서 소규모 생산자를 돕기 위해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했다. 회원(소비자)은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자신들이 소비할 채소 및 과일 값을 선불로 지불한다. 채소 배급은 보통 5월부터 시작해 12월까지 계속된다. 가격은 바구니 종류에 따라 다른데 바구니당 보통 16유로, 반 바구니는 8유로다. 선택한 바구니와 기간에 따라 계산된 회원들의 선금은 지역 농부들에게 일정한 수익금으로 투자되어 농산물의 안정적인 생산을 돕는다. 소비자들은 그 대가로 매주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아마프는 상업적 소비가 아니다”

아마프의 운영은 지역 단위로 이뤄진다. 지역 그룹별 아마프 회원은 근교 생산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다. 계약 내용을 보면 채소는 매주 같은 시간대, 같은 장소에서 배급돼야 한다. 채소 바구니 구성은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결정하며 살충제, 유전자 조작(GMO)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제철 상품이다. 이 시스템은 1950년대 일본에서 시작돼 2000년대부터 프랑스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재 프랑스 지역별 그룹 아마프 수는 1200개. 그 중 파리지엔의 참여가 가장 활발하다.

   
위는 아마프에 채소를 공급하는 농부 장 뤽 바스티앙 씨.
파리에서 가장 대중적 동네인 20구의 멜리몽탕에 아마프가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가입 회원 수는 78명으로 거의 꽉 찼다고 한다. 회원은 주로 30~40대이고, 중학교 교사, 색소폰 연주자, 문화센터 사회자 등 다채롭다. 이들의 공통점은 지역 농부를 돕고 싶어하고 자연을 닮은 소비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3년째 아마프에 가입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올리비에 씨는 “대규모로 산업화한 농업 구조에서 소외된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함으로써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라고 한다. 그런데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궁금했다. 2008년 9월부터 아마프에 가입한 탈 도르 씨에 따르면 “아마프의 채소 가격은 일반 슈퍼마켓이나 시장보다 비싸고 유기농 매장보다 싸다. 대형 슈퍼마켓보다는 30% 정도 비싸다”라고 한다. 하지만 농부를 돕는다는 점은 상업적 의미보다 더 큰 것 같다. 중학교 수학 교사인 장 마크 씨는 “아마프는 상업적 소비가 아니라 도시와 농부의 만남의 장이다”라고 덧붙였다.

자연에 가까운 소비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소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기농 매장에서 본 상품의 원산지가 프랑스에서 먼 나라였다. 그렇다면 유기농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라는 제라르 씨의 지적은 그래서 수긍이 간다. 아마프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잊어버린 채소를 발견하는 것이다. 한동안 식탁에서 사라졌던 돼지감자, 검은 무, 야생 당근 등은 아마프를 통해 새롭게 돌아왔다.

농업국가였던 프랑스에서 1950년대만 해도 농장 경영자는 230만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5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이들의 경작 규모는 대규모이다. 농업의 산업화·대량화는 필연적으로 유해한 농약 사용, 불필요한 운송 비용 등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그래서 아마프의 자연을 존중하는 생산과 책임감을 동반한 소비에 대한 접근은 신선하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 불필요한 소비가 불러오는 빈곤한 삶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소비하는 풍부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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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jworld.or.kr/html/?b_info=1
진단과 처방
작성자 : 이인제, 등록일 : 09-07-01

IJ 세상 이야기 (34)

진단과 처방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다.  정확한 진단과 과학적 처방이 있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사회의 병리현상도 마찬가지이다.  원인을 찾아내고 합리적인 정책으로 대응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엉터리 진단은 엉터리 처방을 불러오고 마침내 회복불능의 고통을 가져다준다.  사람의 몸이나 사회 모두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6월에 당연히 열려야 할 국회가 부질없는 정쟁으로 닫혀있더니, 어제까지는 꼭 처리해야 할 비정규직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까지 미뤄버렸다.  이제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한지 2년이 되는 경영자는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든지 해고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매체는 일제히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위 법의 개정불발로 인하여 대량해고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야단이다. 

 나의 판단으로도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당하는 일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모두 다 서툴게 법을 만들고 환부가 곪아 터지는 순간에도 이를 외면한 정치권의 책임이다.  의사로 치면 진단과 처방이 모두 엉터리이고, 환자에 대한 애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의사에 비유할 수 있다.  나 자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확산은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획일적인 전통산업으로부터 변화무쌍한 지식산업의 확대가 다양한 고용형태를 만들고 있다.  지식산업은 장래에 대한 예측이 매우 불안정하다.  자연히 고용형태도 변화에 손쉽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우리 고용시장이 너무 경직되어있기 때문이다.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해고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경영자는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해고가 용이한 고용형태를 찾게 된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전자라고 생각한다.

 원인이 이렇다면 처방도 거기에 맞게 나와야 한다.

 지식산업의 확대 추세로부터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다양한 고용형태는 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는 정책수단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강제로 정규직 근로자로 만들어 그 틀 안에서 보호하려고 한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경영자는 경쟁력이 없으면 사업을 접을 자유가 있고, 또 사업을 하기 싫은 경영자를 강제로 사업을 계속하도록 할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고용시장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경우라면, 그 처방은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다.  법으로 정규직 고용을 강제한다고 할 때, 경영자에게 다른 선택이 없다면 모르지만, 그 강제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경영자는 사업을 그만둘 수도 있고, 해외로 이전할 수도 있으며, 일단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고 얼마 후 새로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정권에서 비정규직근로형태의 확산과 불평등한 처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폭발하면서 지금의 법이 만들어졌다.  고용의 불안과 불평등한 대우에 고통 받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서로 자신들의 정치세력으로 끌어들일 목적으로 각 정파들이 이런 엉터리 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법의 모순이 폭발하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실업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외면해버렸다.  참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쌍용자동차를 보자.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이 공장을 점거하고 결사항전을 벌인다.  구조조정이 필요 없는데 경영자가 다른 목적으로 구조조정을 악용한다면 모르지만,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노동조합이 설사 구조조정 없이 회사를 회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최종 결정은 경영의 몫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이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회사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경영이 정상화 되면 그 때 구조조정된 근로자들을 우선 복직시키는 방안에 합의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계속한다.    이대로 가면  회사의 파산 이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파산이 몰고 올 폭풍을 생각해보자.  그들 모두가 실업의 절망에 빠지고, 협력업체 모두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근로자의 수로 계산하면 그들보다 9배가 넘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실업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우리 자동차 산업이 약화되고 평택 지역경제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내가 노동부 장관으로 일할 때, 공장 안에서는 파업을 하지 못하도록 법을 고치려 한 일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근로자들이 절대로 공장 안에서 파업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 몇 몇 의원들이 극구 반대하여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로자들이 기업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기업이 자기의 소유로서 자기가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인가.  이는 안 될 일이다.

 쌍용자동차 노조는 우선 외부 세력을 모두 내보내야 한다.  특히 정치논리를 내세우며 정치투쟁을 일삼는 세력과 결별하지 않으면 해답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 자동차를 살 사람은 많고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쌍용자동차 뿐이라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 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될 말인가.  저 미국을 보라.  GM이 문을 닫으면 미국의 자존심은 멍이 들고, 디트로이트라는 거대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 GM도 경제논리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는 운명을 맞고 있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2009.     7.     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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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133

기간당원제가 정당개혁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위상은 무엇이었나?

2009-01-21


김두수(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1. 기간당원제, 타협할 수 없었나?


“실제로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패배한 것과 기간당원제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선거 때마다 우리당은 위기상황이라며 지도부가 마음대로 공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패배할 때마다 지도부는 기간당원제 폐지를 개혁 방안으로 들고 나왔다.

개혁당원들은 여기에 밀리게 된 것은 처음부터 너무 이상적인 입장을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도 지역과 소득에 따라 당비의 액수가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일률적인 당비를 고집하니 정당원의 수가 급격히 주는 것은 당연하다. 지도부는 이것이 선거패배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개혁당 측이 약간의 양보도 없이 타협을 거부하다가 끝내는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최선은 없다. 차악이나 차선을 택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부족했다.”

- 조기숙 ‘마법에 걸린 나라’ 2007


나는 2004년 6월경 ‘우리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조기숙 교수와 함께 기간당원제 문제를 토론했던 사람 중에 하나다. 조기숙 교수의 이러한 평가에 대체로 동의한다. 지금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조기숙 교수는 “미국의 경우에 당비라고 할 수도 있고 후원금이라고 할 수 있는 액수가 대체로 ‘1달러’ 이하가 대부분이다. 당비문제는 유연하게 가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때도 의견의 차이가 많은 경우에는 조기숙 교수의 조언으로 조율된 사안이 많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해명을 할 필요를 느꼈다. “개혁당 측이 약간의 양보도 없이 타협을 거부하다가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게 된 것”이라는 조기숙 교수의 지적은 전체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개혁당 출신(?)은 아니지만, 개혁당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왜 그랬는지는 1편에서 자세하게 소개했다. 내 나름대로 회고해 보면, 위원회 내부에서 날카롭게 논쟁하고 맞서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그때그때마다 타협한다고 한 과정이 기간당원제도였다. 2004년 8월, 중앙위원회에서 기간당원제도의 틀을 만장일치로 확정하고 기뻐했던 것은 대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격렬한 논쟁이 재연될 것이라고 그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때 ‘정개특위’에서 있었던 타협의 한 사례를 살펴보면, 나름대로 타협의 산물로 ‘기간당원제’가 탄생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는 ‘당비문제’다. 그때도 “당비를 얼마로 할 것인가?”에서 큰 견해 차이가 있었다. 개혁당 출신들은 당연히 ‘1만원 납부’를 선호했다. 소액은 당비대납을 가져올 수 있고, 실질적인 당활동, 당보발간, 당교육을 생각해 보면, 5천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주당 출신들은 당에 자원봉사를 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당원들조차도 당비납부에는 너무나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당비를 납부하지 않아도 당 봉사활동 등 실적이 있는 당원은 기간당원으로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당비 문제보다도 당원 자격 조건으로 당비납부를 의무화할 것인가? 여부가 치열한 쟁점이 되었다. 이 쟁점의 전개과정은 1편에서 소개했으니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 위원회에서 토의한 것은 당원 자격 조건문제는 나중에 결론을 내기로 하고, 당비를 받는다면 얼마로 할 것인가? 하는 비교적 단순한 문제는 합의하기로 했다. 결국 당비는 개혁당 당비납부의 성공사례와 노무현의 ‘돼지저금통’ 모금의 긍정성이 영향을 미치게 되어 ‘현실적이고 상징적 액수(?)’로 일단 타협하였다. 제출된 안은 1만원, 5천원, 1천원이었다. ‘정예당원’개념에서 ‘100만 당원’으로 개념 전환과 조기숙 교수의 조언, 그리고 호남지역 농촌 지역구를 가진 이강래 의원의 강력한 주장으로 서로 서로 양보하여 타협을 한 결과, 최종적으로 ‘2천원 이상’이 낙찰되었던 것이다.


조기숙 교수의 평가대로 개혁당 측은 중간에 다시 한번 크게 타협을 했어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시기를 2005년 12월경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는 정세균 비상집행위원회 시기다. 연이은 재보궐선거에서 완패를 하자, 지도부와 현역 국회의원들은 ‘기간당원제’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콩가루 집안에 자충수에 자충수를 거듭하더니 드디어 ‘공천문제’에 손대기 시작했다.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이유가 ‘국민참여경선’으로 후보를 잘못 뽑아서 아니라,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전략공천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기간당원제’를 제물로 삼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천안지역에 공천한 이명수 후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공직후보자 경선제도’에 초점이 맞추어졌을까? 국회의원들이 느끼고 있는 기간당원제에 대한 불만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유리한 경선제도를 만드는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이들은 2006년 지방선거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참여경선’에서 기간당원을 배제하고 ‘여론조사 결과’를 50%까지 도입하자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7명이 모이는 당헌개정소위원회에서 2명을 제외한 5명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나는 그때 여론조사를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면, 강행처리할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여론조사’가 도입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지형에 주목했다. 기간당원제가 공천제도와 연관성이 아주 높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기간당원제’가 패배의 원인은 분명히 아니지만, 당 내부의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 점은 분명했다. 극단적 대결이 아니라면, 타협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론조사’라는 제도의 문제점은 있지만, 국회의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여 당내 평화와 지방선거 대비를 했으면 했다. 내가 소속되어있는 ‘참여정치실천연대’에서 ‘여론조사 도입’ 문제를 숙고했다. 그러나 결론은 전면 거부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당내 정치세력으로 경쟁관계에 있었던 ‘국민참여1219(국참)’가 기간당원제 고수를 깃발로 오히려 ‘참정연’을 타협세력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선명성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소위원회 위원 중에 '국참' 소속이었던 사람은 여론조사 50%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면서도, 내가 당헌개정소위에서 “여론조사를 20~30% 범위에서 도입한다면 타협해 볼 수 있다”고 토론한 것을 당 게시판에 공개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참정연' 세력을 변절세력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또한 중앙위원회에서도 기간당원제 고수를 발언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기간당원제를 약화시키는 정책에 찬성하는 이율배반의 형태를 보였다. ‘참정연’이 곤욕스런 처지에 빠졌다.


둘째, 정치전문가의 입장에서 ‘여론조사’ 제도 자체의 결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선에 여론조사가 도입되는 것은 지극히 한국적 방식(?)이다. 어떤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여론조사라는 것이 전문가의 소견이다. 또한 한번 도입하기 시작하면 점차 50%이상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기간당원제 논쟁에서 싸인 불신이 더욱 깊어져 있었기에 우선 ‘의혹’의 눈길로 볼 수밖에 없었다.


셋째, 기간당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경선’을 한번도 실시하지 않고 또다시 제도를 개정한다는 불신이었다. 우리당 당헌 어디에도 터무니없는 ‘기간당원’만의 경선은 없었다. 우리당의 경선은 2가지 방식 중 하나로 선택하여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전(全)기간당원경선제와 국민참여경선제이다. 기간당원 숫자가 유권자의 1% 미만이거나, 1000명 미만이면 전(全)기간당원경선제는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국회의원 선거, 광역도지사 선거의 경우는 중앙위원회, 지방자치선거는 도당 상무위원회에서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호남을 제외하고 기간당원경선제가 진행될 곳은 없었다. 또한 중앙위원회와 상무위원회에서 의결해야 가능했다. 그래서 대체로 국민참여경선제를 실시하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민참여경선제는 기간당원이 30%에서 50%까지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참여 비율은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기간당원제’에 관한 대타협을 2005년 겨울에 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판단'이었고 '전략적 선택'이었다. 첫 번째 문제와 연결된 문제의식으로 정치세력의 선명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제 와서 타협하여 얻을 것이 많다면 모르지만, 명분도 잃고, 실리도 잃어버리는 결과가 온다고 본 것이다. 이 글이 기간당원제를 기본으로 하는 공천제도를 개정하려는 세력들이 옳았고, 타협하지 않은 개혁세력이 틀렸다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기 바란다. 그때는 열린우리당이 분당하는 최악의 경우에도 ‘창당정신’을 사수했다는 명분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세균 당의장의 비상집행위원회는 여론조사 방식을 거듭 강행 통과를 시도하여, 결국은 뜻을 이루었다. 또한 지방선거 과정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자의적 공천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기간당원제’를 사수했던 개혁세력은 차후에 있었던 열린우리당의 해산과정에서 ‘창당정신’을 사수했다는 명분으로 대타협을 거부한 정치적 자산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다. 당을 사수하지도, 새로운 당을 창당하지도 못하고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선거에 합류하였다. 대타협을 거부하고 치열하게 ‘기간당원제’ 투쟁하던 ‘참정연’이 오히려 자체 해산을 결의하고 말았다. ‘참정연’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하겠다.



2. 기간당원제는 어떤 정당모델인가?


당원제도만으로 정당의 특징을 나타내지는 못한다. 이 글에서는 당원제도와 정당모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당원제도와 연결된 정당모델은 통상 ‘지지자 중심 정당모델’과 ‘당원 중심 정당모델’이 있다. ‘지지자 중심 정당모델’은 대체로 ‘미국식 정당’을 말한다. ‘지지자 중심 정당모델’은 마치 당원은 없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하는데, 미국의 정당에는 당원들, 엄청난 ‘열성당원들’이 있다. 100년 이상의 정당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당원들의 열성이 대단하다. 미국의 당원들은 선거 때만 되면, 1달씩 휴가를 내서 자원봉사하고, 후원금을 납부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대를 이어 지지하기에 자신의 정당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는 지지하는 정당을 표시하는 스티커나 깃발을 창문에 내다 걸기까지 한다.(그래야 귀찮은 다른 당 선거운동원이 찾아오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기간당원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당원들이다. 기간당원제를 처음에 설계했던 사람들도 이런 당원들을 원했던 것이다. 모든 정당은 당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정당도 유럽의 정당도 심지어 동원형 당원제도를 대표하는 ‘3김시대’의 정당도 당원은 있었다. 당 총재가 당원의 권리를 독점하고 있었지만, 당원은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는 정당모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정당을 이루는 최소한의 기초, 열성적인 당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의 당원과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의 제일 큰 차이점은 공직후보 선출이다. 미국의 정당은 공직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을 국민이 직접 참여하여 치른다. 그 정당에 참여하여 투표하는 국민을 당원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기도 한다. 만면에 우리당은 국민참여경선제를 선택하여 기간당원은 50%~30%까지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미국식 경선제도를 중심으로 약간의 당원참여를 보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당의 ‘국민참여경선제’는 한번도 제대로 실시하지 못했다.


한국에도 일부 학자와 정치인들이 미국식 원내정당을 정당개혁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선거법, 정당법 개정에서 미국식 제도가 도입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당모델도 역사적 과정에서 끝임 없이 변화발전하고 있는 실체이기에 단순하게 비교하기 어렵지만, 미국식 정당 모형과 유럽식 정당 모형의 주요한 특징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자.


첫째, 중앙당의 역할과 규율을 살펴보면, 미국은 거의 없거나 느슨한 편이다. 미국은 연방국가의 특징으로 중앙당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전국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통령 선거 같은 전국적인 선거에서만 그 역할을 하지만, 이때도 대통령후보의 선거캠프가 중심이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특징으로 3권 분립에 기초하여 대통령은 의회를 상대로 정치를 한다. 당연히 국회의원 중심의 원내정치가 활성화되어 원내대표 중심의 원내정당이 된다. 반면에 유럽식은 중앙당 당수가 차기 총리이기 때문에, 정당체제로 총선을 치루고, 당규율 또한 강력하고 분명하다. 내각제이기에 당수 중심의 정당체제가 이루진다.


둘째, 공천제도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미국은 각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참여하는 개방경선(오픈 프라이머리), 소속 당원으로 신청하여야 참여하는 폐쇄경선(클로즈 프라이머리), 당원이나 대의원 자격을 가져야 참여하는 대의원 대회(코커스)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정당 문화와 유럽의 정당 문화는 여기에서 확연히 나뉘어 진다. 미국의 개방경선은 1930~68년을 거치면서 정당의 보스, 조직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었다. 72년 대선부터 제도가 완전히 정착했다. 또한 개방경선이 가능한 근저에는 철저한 양당제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식은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지구당 대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이다.


영국에 잠깐 정치연수를 갔을 때, 노동당 원내 부총무를 만나 이것저것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지난 100년 동안 노동당이 계속 당선된 런던의 노동자 밀집지역구에서 2선을 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경선을 하느냐고 하니까, 동별 추천자를 받다보니 예비후보가 많은 경우에는 50여명에서 시작하기도 한다고 한다. 자신은 섬유노조 위원장 출신이라 다른 경쟁자들을 쉽게 이기긴 했지만, 처음 후보자로 나설 때는 치열했던 모양이었다. 토니 블레어의 전기를 보면, 중앙당에서 후보자들을 각 지구당에 추천하기도 하고, 자천하기도 한다. 반드시 지구당에 설치되어 있는 ‘후보자 심사위원회’에서 과반수의 동의를 통과해야 후보자격이 주어진다. 이때 통과하는 사람은 3~5명 정도 되는 모양이다. 이 복수의 후보를 놓고 지구당 당원대회에서 선출하는 과정이 블레의 전기에 약간 소개되어 있다. 영국은 소선거구제라 지구당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독일은 주별로 정당명부를 먼저 작성하고, 지구당에서 지역구 출마자를 선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열린우리당에서 ‘정당모델을 중심으로 한 당원제도논쟁’은 창당 초기의 과정이 아니라, 2005년 후반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정당모델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초점은 당원제도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식 정당모델의 장점을 주로 검토했던 것은 당의 지도체제와 원내정당 도입문제였다. 그래서 한국적 상황을 반영하여 제왕적 총재를 대신하는 집단지도체제인 ‘중앙위원회’ 제도와 원내정당의 일환으로 정책위원회를 관장하는 ‘원내대표’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경선제도에서도 ‘당원경선이 아니라 국민참여경선제’가 선택된 것이다. 미국식과 동시에 유럽식 정당모델을 같이 검토했다. 굳이 정당모델로 이야기하라면 ‘혼합형 정당모델’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3. 왜 우리당은 정당 모형으로 ‘혼합형’을 선택했을까?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미국식’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의 정치체제와 형태는 유럽식에 가깝다. 첫째 강력한 중앙당의 존재로 공천권의 정당독점, 둘째 국회를 중심으로 정당간의 극한 대결, 셋째 헌법에 도입되어있는 내각제적 요소에 따른 국정운영 등이다. 그래서 한국의 정당정치 형태와 정치문화 환경은 유럽식에 가깝다. 당수로 대표되는 중앙당이 선거에서 대결한다. 한국은 총리(또는 수상)가 대통령이란 이름만 바뀐 체, 정당과 정당이 대결하는 선거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국 정당법의 기본도 유럽식에 기초하여 재정되었다.


한국의 정당들은 유럽식의 정당 모형에서 특히 ‘민주성’이 없는 3김식 정치가 적용되면서 1인 사당화의 길을 걸었다. 유럽에는 없는 제왕적 총재가 등장한 것이다. 박정희 독제체제의 유산과 함께 30년 넘게 패권정당체제가 계속되었다. 자연히 정당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즉 사당화는 당심과 민심의 불일치를 가져오게 되어 있었다. 3김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먼저 시작한 것이 공천제도의 변경이었던 것이다.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방법보다 기술적인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에서 실시한 국민참여경선제도는 우리나라 정당정치에서 정당 자체를 민주화하기보다도(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기 때문에) 우선 간단한 공천제도를 먼저 개혁함으로써 효과를 본 대표적인 표본이다.


열린우리당은 정치개혁, 정당개혁을 모토로 탄생한 정당이다. 확실하게 기존정당과 달랐다. 중앙당에는 격렬한 정당대결을 부추기는 ‘대변인 제도’를 개혁하기위해 ‘공보실 체제’로 전환하고, 누구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원내에 ‘대변인’ 제도를 두었지만, 스스로 정치쟁점을 생산하는 국회의원들이 없자, 공보실의 역활에 불만이 쏟아졌다. 또한 누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기존 관행에 익숙한 기자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결국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당 지배와 공천권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사무총장’제도를 당을 관리 운영하는 체제인 ‘사무차장’으로 바꾸고, 원내로 정책위원회를 이동하는 과감한 조치를 취했지만 야당에 격을 맞추어야 한다는 이유로 사무총장으로 부활하고, 원내로 이동한 정책위원회는 원내대표와 당의장의 권력투쟁의 한 형식이 되었다. 이렇게 6개월을 못가서 하나씩 복귀되기 시작했다. 정치체제와 문화가 아직은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희생의 각오로 과감하게 선택한 제도였지만, 지지율 하락이라는 단기적 흐름에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민들이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추진했지만, 기존의 관행에 익숙한 중진들은 야당의 극한적 저항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고정적인 ‘대변인’제도를 서둘러 부활시켰다. 정당개혁의 장기적 관점과 전략적 인내심이 부족했다.

   

우리당은 2003년 창당과 2004년 총선과정에서 ‘선거연합정당’의 성격을 가지고 탄생한 당이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짬뽕정당’ ‘잡탕정당’으로 불릴 정도로 당선된 국회의원의 성향도 천차만별이었다. 거듭되는 당의장의 교체로 당 지도력이 취약해지면서 108명이나 되는 초선의원에 대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당의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위원회’는 당의장과 당중진들의 과거의 관행과 견제 때문에, 제왕적 총재가 부재한 상황에 대한 새로운 지도체제로 자리를 잡지못하고 좌충우돌하기만 하고 정치의 중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당의 당원제도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럽식 정당 모형을 기본으로 ‘당원제도’를 설계한 것처럼 보인다. 제왕적 총제체제인 1인 사당화를 빨리 벗어나는 제도개혁의 핵심을 당의 뿌리인 당원, 건강한 당원을 양성하는 것에 두었다. 선거과정에서 자발적 당비납부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비극 중에 하나는 어쩌면 기간당원제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동시에 ‘원내 정책정당화’라고 불렸던 ‘원내 정당’ 추진을 함께 했던 것에서 비록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원내정당이 될 수 있는 정치문화도 없고, 정치체제도 아니고 기본 토대가 없는 여건에서 선도적으로 원내정당으로 이동하다보니 강력한 야당의 격렬한 저항을 뚫지 못했다. 정당체제의 중심을 정확하게 잡지 않은 상태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달려가다 보니 끊임없이 흔들려버렸다. 우리당의 경우, 기간당원제의 문제뿐만 아니라 창당의 정신과 초기 개혁조치들이 후퇴하면서 다른 정당과의 차별성이 없어졌다. 정당개혁만 놓고 보면, 도낀 개낀이 되어버렸다. 한국적 상황이기도 했고, ‘한국형’ 또는 ‘혼합형’의 비극이기도 했다.



4. 기간당원제도 유감(?)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기간당원제도는 중간에 당의장 선출과정에서도 크게 충돌했지만, 결국 2006년 지방선거 공천제도에서 첨예하게 충돌했다. 돌이켜 보면, 2003년 민주당 개혁안도 결국은 제왕적 지구당위원장 제도와 맞물리는 총선 후보자 문제 때문에 개혁안이 좌절된 것이다. 사실상 2004년 총선 때문이었다. 총선 후보자격을 얻는 과정에 대해 불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잔류했다. 그만큼 한국정당에서 후보선출 문제는 분당도 각오하는 치열한 문제였다. 그러고 보면, 열린우리당도 필연적으로 거칠 수밖에 없는 공천제도 후유증을 앓은 셈이다. 1편에서 한 이야기이지만, 만약에 열린우리당에서 2004년 후보선출과정에서 비록 모집되었지만, 당원을 50% 참여시키는 경선을 실시했더라면, 조기 정착의 가능성이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다시 한번 느낀다.


민주화 20년이 지난 현재의 시점에서도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 정치의 큰 현상 중에 하나는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당정치’이다. 또 하나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대결정치’다. 이 2개의 현상 중에서 ‘지역주의’에 관한 것은 다음 기회에 토론하겠다. 작년 8월에 개최한 사회디자인연구소 창립 심포지엄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한 소고’에서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의 근거 토대와 선거에서의 영향에 대해 발제한 적이 있기에 오늘은 생략하기로 한다. 또 다른 문제인 ‘극단적 대결정치’에 주목해 보자. 얼마 전, 2009년 1월 6일까지 대한민국 국회는 전쟁터였다. ‘국회폭력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를 주제로 KBS 심야토론이 있었다. 토론 중간에 미국에서 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씨를 전화 연결하여 폭력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미국에서는 절대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의 공천을 중앙당이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중앙당이 무슨 권한으로 공천을 하는가? 미국처럼 국민이 공천하면, 국회의 폭력적 대결은 없어질 것이다. 중앙당이 공천을 하니까 국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당지도부를 보고 정치하는 것이다. 국민의 공천으로 후보자를 선출하면, 폭력을 쓰는 정치인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국회 폭력은 없어진다. 한국도 하루 빨리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해서 국회 폭력이 없어지길 바란다.”


현재, 국회에서 극한대결로 나타나는 폭력(?)사태의 원인은 여러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헌법을 포함한 정치체제의 문제로 접근하기도 하고, 후보자 선출제도를 포함한 정당법 문제로 접근하기도 하고, 국회법 등 운영의 규칙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은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기간당원제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 검토하고 있는 ‘기간당원제도’가 언제 규정된 제도인지 불분명할 정도로 내용은 수없이 수정되었다. 논쟁의 초점도 그때마다 달라지고, 개선점도 달랐다. 솔직히 개선하기보다도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막아내는 일’에 급급했다. 나와 정세균 당의장과 언쟁을 벌릴 때, 참으로 무참했다. 당의장은 “문제점을 개혁하겠다는데 이렇게 막는 법이 어디 있어요!”라고 했고, 나는 “세상에 바꾸면 다 개혁입니까? 개악은 없나요?”라고 맞고함으로 대꾸했다. 한동안 자괴감에 몸을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어느새 개혁파가 아니라 지키는 수구파(?)로 굴욕을 감수해야했다.


한번도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한 ‘기간당원제’가 아니라, 당의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거머리 같은 ‘기간당원제’가 되어 있었고, 기간당원제가 오히려 ‘동원형 당원제’가 되어있었고, ‘당비 대납’의 구시대 정치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정치세력으로 가지고 가야할 명분으로 나는 기간당원제를 선택했다. 그래서 2007년 마지막 중앙위원회에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63명의 중앙위원 중에 유일한 기간당원제 사수를 선택한 것이다.


이제는 21세기형 ‘진보정당’, 집권 가능한 ‘진보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새로운 당원제도’를 정립해야할 때다. 한국정당 역사에서 열린우리당의 기간당원제도는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민주노동당’은 계급에 기초한 대중정당으로써 자신의 몸에 맞는 진성당원제를 정착시켰다. 한나라당마저도 ‘책임당원제’라는 당직자에게 할당된 당원제도를 안착시켰다. 정말 닭짓만 하지 않았더라면, 한국형 모범정당의 뿌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부러움이 앞설 따름이다.


다음 3편에서는 지난날의 실패를 교훈으로 한국의 실정에 맞고, 정당의 철학과 이념, 가치에 맞는 새로운 당원제도는 무엇일까? 한편에서는 대중 참여의 꽃이 피었던 ‘촛불’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대정당의 몰락이 있었다. 웹2.0과 인터넷과 모바일이 정치의 기본 수단이 되는 시대에 새로운 당원모델은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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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특권부터 해체하라.

풀내음 팀블로그/하승수의 "두서없는삶과자치이야기"    2008/09/01 11:35

요즘 현안 하나하나를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이럴 때일수록 큰 흐름을
보고 잘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87년 이후에 흘러온 과정들을
보면, 우리나라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지만, 정치의 변화없이는 바람직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금의 상황이 보여주는 것같습니다.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정당 독점의 정치구조'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
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50%에 미달하는 투표율이 보여주는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
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인데,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그 통로는 바로 '정당
독점의 정치구조 타파'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여기저기서
문제의식이 확산되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겁니다. 서울신문에 한달에
한번 쓰는 칼럼에 '정당의 특권부터 해체하라'는 제목으로 쓴 글입니다.
좀더 자세한 이야기는 자료실에 있는 한국사회포럼 발제문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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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정당의 특권부터 해체하라/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어떤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의 특징은 ‘눈먼 돈’으로 조직을 유지하면서 목에 힘주고
행세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오로지 스스로의 파워를 유지·강화하는
일 뿐이다.
때로는 조직원 중에 나쁜 일을 하다가 적발되는 자가 있어도, 시간이 좀 지나면
해결해 준다. 조직의 파워가 강할 때에는 조직원들에게 ‘낙하산’으로 돈 많이 받는
자리도 마련해 준다.
경쟁하는 조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이 조직의 중요 과제이다. 그래서
비슷한 조직이 함부로 만들어지지 않도록 진입장벽을 튼튼하게 쳐 둔다.

▲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마치 ‘조폭’을 연상하게 하는 이 조직은 바로 우리나라의 기성정당이다. 우리나라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기성정당들이 ‘자기들끼리 해 먹는’ 정치구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권도 이런 특권이 없다.2008년도에 정당에 지급된 국고보조금만 해도 500억원이 넘는다.2007년에는 569억원,2006년에는 580억원이 지급되었다. 선거가 있든 없든 경상보조금이란 명목으로 보조금은 지급된다.

‘이렇게 많은 국민의 세금을 받고 있는 정당들이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은 이미 내려졌다.50%를 밑도는 총선 투표율은 정당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벌여온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임을 의미한다. 사실 정당은 자발적인 정치결사체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줄 명분은 희박하다. 미국, 영국은 정당운영비를 보조해 주지 않는다. 독일처럼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인정하는 나라도 절대적·상대적 상한제를 두고 있다. 우리처럼 국고보조금을 마구 퍼주지는 않는다.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근절하기 위해 국고보조금을 준다지만, 음성적인 정치자금이 국고보조금을 준다고 해서 근절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받아 문제된 경우가 한두 번인가.

게다가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온갖 종류의 혜택을 받고 있다. 정당에 내는 소액의
당비와 후원금은 10만원까지 전액 세액공제가 된다. 세액공제가 된다는 것은 낸
돈만큼 세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는
셈이다. 이것은 다른 공익단체나 재단에 기부를 하면 기부한 액수의 8.8∼38.5%
정도만 세금이 줄어드는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혜택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정당들은 누릴 수 있는 특권은 모두 누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을 지키기 위해 기성정당들은 정당제도나 선거제도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고 정치를 독점하고 있다. 경쟁자들이 나타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정당 설립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정당이 아닌 정치단체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여러 선진국들의 경우에는 정당의 설립도 비교적 자유롭고 정당이 아닌 정치단체의
 존재도 인정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철저하게 기성정당들에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또한 선거운동에 대해서도 매우 까다로운 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이것도 새로운 정치세력이 기성정당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것을 막는
효과를 가져 온다.

정당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직·간접적인 혜택을 누리면서 선거 때에만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선거가 끝나면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경쟁’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영역인 정치는 비경쟁적인 독점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 기성정당들이 ‘경쟁’을 이야기하면서 공공부문 개혁을
이야기하고, 일부 시민단체들이 국가로부터 일부 사업비를 지원받는 것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부터
 대폭 줄이고 스스로 누리는 각종 특권부터 해체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성정당들이 스스로 행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나서서 그들의 특권을 해체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기성정당들이 만든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다.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2008-09-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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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시민자치의 이념에 근거하여 풀뿌리운동의 다양한 사례를 발굴하고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목적하는 연구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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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정당’과 정당개혁( 뜸 )
 
생각나래
2007.10.16

 

‘미디어 정당’의 핵심, ‘유권자 중심 정당개혁’
-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은 근 2~3년 동안 ‘미디어’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미디어 정당’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음
- 그러나 외국에서의 ‘미디어 정당’ 발전과정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결과적 형태인 ‘미디어 정당’ 형식을 차용하고 있어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음
- 미국, 영국 등의 미디어 정당은 ‘정당개혁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임. 즉, 국민과 괴리된 당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정당개혁을 추진했고 (유권자 중심 정당개혁), 그 결과물로서 ‘미디어 정당’ 형태가 자리잡게 된 것임
- 그러나 우리나라 정당들은 ‘정당개혁 없는 미디어 정당’을 말하고 있는 실정임
- 이에 미국, 영국 등의 ‘미디어 정당’ 발전과정을 돌아보고, 우리나라 정당개혁의 일 방향으로 ‘미디어 정당’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함


 

■ 외국에서의 ‘미디어 정당’ 개혁 사례 ① : 영국 노동당

 

1983년 ~ 1995년 시기의 영국 노동당의 모습
- 영국 노동당은 전통적으로 개인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정당이었음. 당외 조직인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진성당원의 지지에 의해 유지되었으며, 선거도 개인의 특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당 시스템에 의해 움직였음

- 이러한 영국 노동당은 1983년 보수당에 패배한 이후 10여년간 지속적으로 패배를 반복했는데 핵심 이유는 유권자와의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실패에 있었음
- 노동당의 커뮤니케이션 작업은 불분명한 지휘계통으로 인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으며, 노동당이 펼친 캠페인들은 지나치게 어려워 유권자에게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
- 정책을 제시함에 있어서도 일관된 조정이 부족하고 능동적인 언론대책이 없었음
- 또한 전략적으로 선택된 표적집단은 무시되었고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등 유권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굴드의 미디어 조직으로서의 SCA (Shadow Communication Agency)
- 1985년, 필립 굴드는 노동당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미디어 조직으로서의 SCA를 만들어 활동을 개시함
- 굴드는 노동당이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기 때문에 유권자를 향해 직접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전문가 중심의 미디어 조직을 통해 캠페인 중심의 정당활동에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함
- SCA는 초기에는 비밀리에 활동을 하다 1996년 블레어와의 만남을 통해 노동당 현대화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당 공식 조직으로 인정받게 됨

 

소수정예 미디어 조직으로서의 SCA
- 굴드는 당내에 분산된 권력구조를 혁파하고 당수에 귀속된 단일한 명령체계를 갖춘 정당을 만들 것을 주장함
- 여기서의 당수에 귀속된 단일 명령체계란 기존 한국정당에서 보여준 정당관료적 당 대표 직할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
- 굴드의 단일 명령체계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일원화와 통일적 운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임

- 굴드는 이러한 단일명령체계를 위해서는 전문적이며 능력있는 소수정예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선전과 커뮤니케이션 기능의 중앙집중화를 추구함
- 이는 광범위한 진성당원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정당인 영국 노동당과는 상이한 조직관에 기반한 것으로 가히 혁명적인 주장이었음
- 굴드는 상상도 못한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강한 핵심이 필요하며, 이러한 강한 핵심은 정책의 통합 (integration of policy)과 정보의 확산 (dissemination of information)을 위한 결정적인 요소로 생각함

 

SCA의 주요 원칙

 

- 굴드가 SCA를 만들 당시 노동당의 문제점 해결을 위해 제시한 원칙은 다음과 같음
 ; 당 커뮤니케이션을 지휘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신설
 ; 광고기획사인 BMP를 중심으로 SCA를 구성, 전문적인 커뮤니케이션 의견을  당에 제공
   토록 함 (전략초안 마련, 여론조사 실시와 분석, 광고 제작 및 캠페인 테마 선정, 기타
   커뮤니케이션 지원 활동 등)
 ;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들은 단순화되어야 하고,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고, 핵심테마들을 조
   화  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 신속대응팀을 구성하여 노동당의 실수는 막고 보수당의 실수를 공격하며, 그날의 이슈를
   발굴해 낸다
 ; 모든 캠페인은 무엇보다도 유권자의 여론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 굴드는 나아가 노동당의 10가지 커뮤니케이션 원칙을 제시함
 ① 합의된 전략의 조기 수립
 ② 표적 집단의 선택
 ③ 단순한 메시지의 계속된 반복

 ④ 메시지의 관리 및 응집력있는 제시
 ⑤ 업무의 분명한 책임 분담. 분명한 권한과 책임의 계통확립. 조정을 위한 적절한 구조
     마련
 ⑥ 포지티브한 보도자료의 사전 배포
 ⑦ 당원과의 직접 접촉방식으로부터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권자의 견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캠페인 전환
 ⑧ 외부 전문가의 적절한 활용
 ⑨ 홍보물 종류의 최소화와 반복적인 활용
 ⑩ 이러한 원칙들의 조기 및 지속적인 실행을 위한 당 최고지도부 차원의 권한 위임과
     지원


1997년 노동당 승리를 이끌어낸 주역이자 노동당 현대화의 주역, SCA
- 1997년 노동당은 블레어를 앞세워 마침내 14년만에 집권에 성공했으며, 블레어 당선의 뒤에는 굴드가 이끄는 SCA가 있었음
- 굴드와 만델슨을 비롯한 SCA팀은 이른바 당 현대화론의 전위기구이자 행동조직으로, 당을 장악하고 있던 NEC를 무력화시키고 지금은 노동당을 이끌어가는 명실상부한 기관차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 외국에서의 ‘미디어 정당’ 개혁 사례 ② : 미국 민주당

 

1968년 ~ 1970년대 미국 민주당의 모습
- 베트남전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면서 민주당의 현직 대통령이었던 존슨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으며, 당내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되면서 혼란이 가중됨

- 이러한 와중에 치러진 1968년 선거는 민주당의 참패로 끝났으며 민주당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이게 됨
- 당시 민주당은 파벌 보스들의 합의에 기반한 정당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대중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어필하느냐 보다는 정당 엘리트간의 막후 타협, 조직을 통해 표를 많이 얻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음

 

정당개혁, 정당조직과 정당엘리트 중심에서 후보자와 유권자 중심으로
- 민주당 정당개혁은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로부터 시작됨. 이전까지 대선후보를 선출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정당엘리트의 자리를 예비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와 당원이 대신하게 됨
- 정당조직, 정당엘리트의 역할은 결정적으로 쇠퇴하고 아울러 이러한 역할은 대선후보와 미디어에 의해서 대체됨
- 결국 예비선거제의 확산이라는 정당개혁은 궁극적으로 정당조직의 위축을 낳았고 후보자와 미디어 중심 선거라는 새로운 현상을 불러옴
- 정당 엘리트들의 역할 쇠퇴와 아울러 주(state parties)와 지방단위(local parties) 정당 조직의 역할과 활력도 크게 쇠퇴하게 됨
   ; 주와 지방단위 정당 조직은 단지 예비선거를 운영하는 규칙의 제정만을 담당할 뿐 선거
     에서 지지자를 동원하는 선거조직으로서의 역할은 크게 위축됨
   ; 이에 따라 선거에서 지지자를 동원하는 핵심적인 기반으로서의 정당의 역할은 1970년대
     부터 눈에 띄게 쇠퇴함

 

정당중심 선거에서 후보자 중심 선거로 바뀌면서 미디어의 중요성이 대두됨
- 정당조직과 정당엘리트가 쇠퇴함에 따라서 정당 조직이 아닌 후보자들의 조직이 수개월에 걸친 예비선거 기간을 이끌어 가게 됨

- 후보자 개인의 조직이 연방정부로부터 선거보조금을 지급받고 선거자금을 모으고, 선거전략을 세우고 이를 집행하면서 선거운동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담당함
- 이후 미국의 선거는 정당 중심에서 후보자 중심의 선거로 (candidate-centered   election) 전환하게 되었으며, 정당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유권자들의 독립적인 판단이 강해짐에 따라 미디어의 역할이 확대됨
- 미국에서의 미디어 정당이란 이렇듯 유권자 중심 정당개혁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했으며, 지금에 있어 미디어 정당이란 곧 후보자 중심의 캠페인 정당을 의미하고 있음

 

미디어 정치, 미디어 선거의 특징
- 정당조직 중심에서 후보자 중심 캠페인 체제로 이전하면서 후보자들은 미디어를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바라보게 됨
- 이에 따라 후보자들은 정치마케팅 회사나 스핀닥터로 불리우는 홍보전문가를 고용하여 미디어를 활용하게 되었으며, 마케팅 영역에서 사용되던 포지셔닝, 포커스 그룹조사, 소비자 마케팅 기법 등이 정치영역에 도입되게 됨
- 전문가 중심의 미디어 선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음
 ; 홍보전문가들은 일관된 전략을 수립하고, 이러한 전략이 선거팀내에서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지휘하는 역할 수행
 ;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자의 포지션과 집중해야 할 유권자그룹 설정
 ; 효과적인 광고기법을 활용, 후보자의 단순명쾌화된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제시
- 리차드 워들린은 1980년대 레이건의 캠페인과 국정운영에 경영학의 소비자마케팅 기법을 응용하여 유권자의 가슴속 가치를 파악하여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며, 딕 모리스는 헐리우드의 소비자 여론조사 기법을 응용해 클린턴을 당선시키고 이러한 기법을 국정운영 전반에 적용함

 

미디어 정당에서 영구적 캠페인 체제로
- “우리는 매주, 매일, 아니 매시간 이겨야 한다.” 조지 스테파노풀러스 (클린턴 공보 비서)
- 헐리우드의 소비자 여론조사 기법을 응용해 클린턴을 당선시킨 딕 모리스는 이러한 기법을 국정운영 전반에 적용하면서 이른 바 ‘영구적 캠페인 체제’를 주창함
- 영구적 캠페인 체제란 선거시기 처럼 일상시기에도 선거와 같은 여론조사 실시, 전략의 수립과 시행 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임
 ; 눈부시게 발전한 미디어 환경과 복잡한 정치제도를 갖고 있는 현대 정치에서는 정당, 후
   보, 대통령 등의 지지율은 매우 중요한 지표로서 지지율을 유지하지 않으면 정당으로서,
   후보로서, 대통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가 힘듦
- 딕 모리스와 클린턴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영구적 캠페인 체제가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실제로 클린턴은 당선 이후 선진적인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과 직접 의사소통하는 방식의 정치로 전환함
- 클린턴은 집권기간 내내 다양한 방식의 여론조사와 유권자 시장조사를 통해 시대적 변화의 다양한 징후를 ‘리얼타임’으로 포착해 정책에 반영함
 ; 균형예산은 로스 페로가 내세운 정책으로 중도적 유권자들에게 각광을 받았음. 클린턴은
   균형예산이 민주당 당론에는 위반되지만 이를 과감히 수용, 중도적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냄


 

■ 영국과 미국 사례의 공통점

 

조직과 정치엘리트 중심 정당에서 유권자 중심 정당으로
- 당 기간 조직과 정치엘리트 중심 정당은 필연적으로 관료적 폐해를 낳게 되고 당과 유권자와의 거리는 멀어지게 됨

 ; 사무처 중심의 정당조직은 이것이 정치조직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베버가 언급한 관료제
   의 한 유형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움
 ; 관료제는 근본적으로 당 지도부의 일사분란한 지휘계통에 의해 움직이는 계서제이며, 외
   부환경과의 소통보다는 당 내부의 레드테입 (red tape)과 충성이 더 중요한 조직일 수
   밖에 없음
- 영국 노동당 SCA의 유권자 중심 조직관, 미국 민주당의 예비선거제 도입 등은 당과 유권자의 거리를 가까이 하기 위한 시도로서 당 조직의 혁명적인 개편을 가져왔음

 

유권자 중심 정당 = 미디어 정당 = 후보자 중심 캠페인 정당
- 당 조직 중심에서 유권자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필연적으로 미디어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미디어 정당으로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됨. 즉, 당 조직 자체가 미디어 정당에 맞게 변화한 것임
- 또한 후보자와 미디어 중심으로 가려면 필연적으로 후보자를 중심으로 한 캠페인이 주요 활동방식이 될 수밖에 없음. 이러한 이유로 유권자 중심 정당 = 미디어 정당 = 후보자 중심 캠페인 정당이라는 수식이 성립하게 됨
-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의 투표형태인 ‘정당중심 투표’는 곧 중앙당 중심의 선거활동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임

 

후보자 중심 캠페인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효율적 조직이 필수적
- 당 조직의 늦은 의사결정, 복잡한 조직체계, 비전문적 판단 등에서 벗어난 SCA는 전문가 중심의 미디어 조직을 통해 블레어의 선거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냄
- 클린턴 당선을 이끌어낸 딕 모리스 역시 전문가 중심의 캠페인체제를 이끌었으며, 이러한 캠페인 체제를 선거 시기에만 한정짓지 말고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수행해야 한다는 취지로 ‘영구적 캠페인 체제’를 주장하고 실행에 옮김


 

■ 한국 정당의 ‘미디어 정당’ 차용 현황 및 문제점

 

한국 정당의 ‘미디어 정당’ 차용 현황
-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비롯한 우리나라 정당들은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디어 기능을 강화하고 있음
 ; 양당 모두 대변인실 인력 강화, TV토론 지원 기능 강화, 인터넷 홈페이지 기능 강화 등
   의 노력을 벌이고 있음
 ; ‘미디어 정당’ 기능의 대표적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은 양당 공히 ‘정당홍보의 꽃’ 으로 불
   리던 ‘당보’의 역할을 축소한 것을 들 수 있음
-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경우 미디어 전략 수립 및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집행을 위한 이른 바 ‘컨트롤 타워’는 없고 당 대표 또는 대변인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임
 ; 미디어 관련 지원 부서는 있지만 이들 부서는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회의 결과를 실행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음
 ; 대변인 논평 역시 현안 대응에만 그칠 뿐 구체적인 미디어 전략에 따른 활동은 아님
 ; 최근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팀제로 개편하면서 홍보기획위원회 산하로 홍보기획팀
   (이전 홍보국)과 미디어지원팀 (과거 공보실) 등이 편재되었으나 명칭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인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음
 ; 특히 홍보기획위원회가 총괄 기능을 담당한다고 하나 이를 책임있게 추진하는 단위도 없
   고, 전문인력도 없어 총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
- 굳이 미디어관련 컨트롤 타워를 찾는다면 최고위원 회의 등 지도부 회의임. 지도부 회의에서 미디어 관련 결정이 내려지고 집행되는 경우는 있음
 ; 그러나 이 역시 일관된 전략에 따른 결정이라기 보다 당장의 필요에 의한 즉자적 결정
   수준이기에 실질적으로 컨트롤 타워는 없다고 봐야 할 것임
- 한나라당 역시 이러한 현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 정당의 현실임


현재와 같은 무늬만 ‘미디어 정당’, 당 시스템의 근본적 변화없이는 불가능
- 우리나라 정당들은 ‘유권자 중심 정당’ 으로의 정당개혁 필요성에 따라 ‘미디어 정당’을 바라본 적이 없음
- 단지 기능적인 측면에서 미디어가 발달했기에 미디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그리고 미국 등의 ‘미디어 정당’이 선진정당 형태이기에 따르자는 표피적 접근수준임
- 우리나라 정당이 ‘미디어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당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만 가능함. 현재와 같이 중앙당 중심, 특히 사무처 중심의 당 조직을 유지하는 한 미디어 정당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함
 ; 미국의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등도 과거에는 우리나라 정당과 같이 사무처 중심의 당
   조직을 유지했으나 획기적인 당 개혁을 통해 지금과 같은 미디어 정당으로 거듭난 것임
 ; 앞서 언급한 대로 사무처를 중심으로 한 정당조직은 고유 사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당
   대표를 중심으로 수직적 구조를 이루기 때문에 외부와의 소통보다는 당 내부의 레드테입
   (red tape)과 충성이 더 중요한 조직일 수밖에 없음
 ; 중.장기적 관점에서 실무적 기능을 수행해야 할 당직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집중
   하기 보다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는데 급급하게 되며, 이른 바 ‘줄 서기’에 주력하는 것은
   사무처 중심의 현 시스템이 스스로 강제한 결과라는 것임

 

당원 관리, 유권자 관리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 현재 중앙당 중심으로 시.도당이 관할하고 있는 당원 관리는 효과가 미지수일뿐더러 미디어 환경에도 부합하지 않는 과거 방식이라는 지적임
- 지금도 당원 대상 교육이 특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당원들 역시 일반 유권자와 동일하게 미디어에 노출되는 정당소식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임
- 오히려 ‘당원’은 상향식 공천제도에 따라 당내 경선에 동원되는 대상에 머물고 있으며, 당내 경선이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현실임


 

■ ‘미디어 정당’ 논의 관련 주요 시사점

 

박영선 의원의 ‘미디어 정당’ 개혁 방안
-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은 2005년 11월, 현 정당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미디어 정당’이 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음
- 다음은 박영선 의원이 제시한 주요 내용임
 ; 박영선 의원은 한국정치에서 2002년 대통령선거는 과거 조직정당의 한계를 보여준 선거
   였다고 지적하면서 당원중심에서 지지자 중심으로 당의 실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함
 ; 구체적으로 사무처 중심의 당 조직은 당과 유권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적합하지 않다
   면서
 ; 미디어의 발달과 그로 인한 유권자 참여확대는 당과 지지세력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
   하며, 당 조직은 지지세력에 대한 메시지 전달과 의사소통 구조를 만드는 기능으로 개편
   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 또한 현재 조직국.여성국.직능국.청년국 등 당원중심으로 편성된 조직을 전문가 중심
   의 미디어 조직, 사회정책 캠페인 조직, 기획.설계.PR.DM 등을 담당할 전략개발그
   룹, 정책 및 공약개발과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확대 등을 담당하는
   부서 중심으로 바꿀 것을 제안함

 

※ ‘미디어 정당’ 관련 박영선 의원의 구체적이고 정확한 주장은 [미디어와 현대정치] (2005년 11월, 박영선 의원실 연구용역 보고서) 참조

 

‘미디어 정당’ 관련 논의, ‘정당개혁 필요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 박영선 의원의 주장이 매우 정확하고 긍정적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미디어 정당’에 대한 논의의 핵심인 ‘정당개혁 필요성’이 빠져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임

- 현 정당구조의 문제점과 이의 발전방향으로서 ‘미디어 정당’을 논의해야 함에도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지적이 없었다는 것임
 ; 예를 들어 박영선 의원의 ‘미디어 정당론’과 열린우리당의 ‘진성당원제’는 공존하기 어려운
   개념임. 이 때문에 ‘진성당원제’ 중심의 열린우리당이 ‘미디어 정당’을 받아들이기 힘들었
   다는 것임
- 이렇듯 미디어 정당 논의는 그 자체만으로 한정지을 수 없고 우리나라 정당구조의 문제점과 발전방향 속에서 검토되고 논의되어야 한다는 지적임
- 일례로 유권자 지지 획득에 실패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경우 당 정체성 논의 등과 함께 당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임
 ; 열린우리당이 사무처 중심의 수직적 당 조직을 유지하는 한 유권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보
   다 당내 질서 유지 확립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됨
 ; 이는 곧 의원 중심의 정당운영 방식과도 연관이 되는데 현재와 같은 복잡한 미디어 환경
   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원 중심의 당 운영이 아니라 홍보, 마케팅, 여론조사
   전문가 등이 참여하고 책임있게 유권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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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현대화 과정을 본받아라!
김두수(사회디자인연구소 상임이사)

...

당 의 현대화를 위하여 “당원과 지지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참여, 네트워크정당’을 지향하며, 주요 공직후보선출과정만이 아니라 당의 주요 의사결정과 정책결정과정에서 국민 참여 기회를 확대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 문구를 그대로 해석한다면, 민주당은 ‘지지자 중심 정당’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 정당사에서 정당모델을 두고 치열하게 논쟁한 당이 있었다. 바로 ‘열린우리당’이다. 당원 중심의 정당이냐? 지지자 중심의 정당이냐? 하는 논쟁 때문에 당이 망가졌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격렬한 당내 투쟁이 있었다. 애초에 설계한 당원제도는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고 끊임없이 수정되었고, 창당 5년 동안 9차례의 당헌개정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개혁과 실용논쟁은 권력투쟁의 또 다른 형식이었다. 양대 세력은 타협을 몰랐고,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앞으로 돌진했다.

2002 년까지 한국의 정당 대부분이 당원이 없는 정당이었다. 명부상에 존재하는 당원이 아니라,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이 없었다. 그때는 정당모델을 떠나서 정당의 기초를 이루는 자발적 당원이 절실했다. 모든 정치학자와 시민단체가 ‘진성당원’이 있어야 정치개혁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2002년 개혁당의 창당, 그리고 2003년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의 시대가 비로소 열렸다. 바로 ‘기간(基幹)당원제도’였다. 하지만, 기간당원제가 당내 권력투쟁의 표적이 되었고, 기간당원의 존재가 공직후보자의 선출과정에서 유리한지 불리한지 계산하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제도적 장점을 살리지도 못하고 열린우리당 해체와 동반하여 폐지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나라당에는 약간의 변형된 형태로 ‘책임당원제’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결과적으로는 어떤 당원제도가 적합했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논쟁의 과정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가장 좋은(?) 당원제도라는 것은 현실 정치세계에는 없다. 다만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더욱 발전시켜야할 민주적 원칙과 절차에 구성원의 공유와 동의가 있어야 한다.

민 주당은 앞으로 당원과 국민에게 개방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하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철저히 국민 참여를 배제한 공천을 실시했다. 대다수의 국회의원 후보를 밀실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국민참여경선이 이루어 진 곳이 거의 없다. 공천만 보면, 2000년 이전으로 회귀하고 말았다. 당원이나 지지자에게 권리를 돌려줄 가능성이 별로 안 보인다. 그런데 선언은 정반대로 가겠다고 한다.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총선에서 각 당은 어떻게 하면 승리할 것인가 하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한다. 총선이 있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비경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등록을 며칠 앞두고 공천하는 현상 앞에서 국민참여경선은 불가능하다. 현실은 철저히 상대후보에 승리할 수 있는 대항마를 고려하여 공천하는 정치공학으로 총선에 임하면서 대국민 선언에서는 아주 원칙적으로 정책결정과정까지 개방하고 참여하게 하겠다는 것이 진정성이 있는 지 자문자답을 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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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eppilian&logNo=45974185&widgetTypeCall=true
미국 대선 - 선출방식(코커스, 프라이머리) 및 일정

1. 미국 대통령 선출방식

 

미국 대통령 선출은 간단히 말하자면, 아래의 3단계 절차를 통해 이루어진다.

1) 정당예비선거(주별 코커스/프라이머리)를 통한 각 당 후보선출

2) 각 당 후보추대를 위한 당별 전당대회

3) 대선 본선거

 

이 중,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핵심은 각 정당(미국의 경우 공화당과 민주당 2개당)이

각각 자체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 과정에 있다고 하겠다.

 

예비선거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통령 후보 선출 경선대회"라고 보면 된다.

한나라당의 이명박후보와 박근혜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전당대회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전당대회에서 최종 투표율이 발표되고, 대선후보가 결정되지만,

미국의 경우 전당대회는 후보 추대가 이미 확정된 후의 형식적 행사일 뿐이고,

실질적으로는 몇 개월간에 걸쳐 전국에서 거행되는 정당 예비선거를 통해 결정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예비선거는 민주당과 공화당에 소속된 당원들만 참가할 수 있는

일종의 당원대회인 코커스(Caucus)와 당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원한다면 후보 선출에

참가할 수 있도록 일반인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어 있는 프라이머리(Primary)로 나뉘며,

각 주는 상기 2가지 예비선거 중 원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 코커스(caucus) : 

- 북미 지역에 거주하는 알공킨(Algonquin) 인디언의 용어로,

  ‘원로(元老)’ ‘고문(顧問)’ ‘추장 회의’를 뜻하며,

  1,700~800년대 미 정치에서 ‘당원 간 정책·전략 회의’를 뜻하는 말로 쓰기 시작했다는 설

- 실제로 정당의 등록 당원만 참여가능, 미국 전체 주의 1/4이 채택

- 진행 방식

   ○ 시간 : 오후 6시 30분~7시

   ○ 장소 : 1,781개 지역선거구에 있는 학교/교회/공공도서관 등

   ○ 절차

       ▷ 민주당 : 당원들이 처음 30분간 토론

                        > 지지 후보의 팻말 아래에 1차 집결

                        > 15% 지지율에 미달하는 후보를 지지한 당원은 후보 재선택

                           (15% 이상 후보 지지 당원도 후보 재선택 가능)

                        > 최종 지지율이 15% 미만인 후보는 대의원 획득 실패

 

       ▷ 공화당 : 당원들이 모여 후보 캠프별로 연설을 들음

                        > 빈 종이에 지지 후보 기입 혹은 손을 들어 투표

                        > 집계 결과 전체 코커스에서 1위 차지 후보에게 카운티 선거에

                           참가할 대의원을 전부 몰아 줌(승자 독식 방식)


* 프라이머리(primary) :

- 원칙적으로는 당원 여부에 관계없이 일반인 모두 참여 가능

-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폐쇄형과 혼합형,공개형등으로 나뉨.

  폐쇄형은 등록된 당원만 투표할 수 있는 방식이며,

  혼합형은 당원 여부에 관계없이 등록만 하면 참여 가능,

  공개형은 주민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형태임
  *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타(他)당원은 참가할 수 없는 준(準)개방형임

- 미국 전체 주의 3/4이 채택

* 대의원 표 획득방식

- 공화당 : 예비선거 1위 후보에게 해당 주의 모든 대의원 표 부여

- 민주당 : 예비선거에서 주자별 확보 대의원 수 인정


*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필요 대의원 수
 - 양당 공히 과반수 득표 필요(민주당 1,995명, 공화당 1,259명 이상 확보 필요)

예비선거에서 각각 당별로 과반수 이상의 대의원을 확보한 후보는

정당별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후보로 지명되며,

선출된 대선 후보는 본선거의 선거인단 확보를 위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 대통령이 되기위한 선거인단 수
- 총 선거인단 : 총 538명(상원의원 100명, 하원의원 435명, 수도 워싱턴DC 몫 3명)

- 필요 선거인단 수 : 과반수인 270표 이상 획득 필요

  ☞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가운데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대통령은 하원에서,

      부통령은 상원에서 표결해 결정(대통령은 1825년, 부통령은 1837년 각각 동 사례 발생)
  ☞ 선거인단 최다주 : 캘리포니아주(54명)

      선거인단 최소주 : 버몬트, 델라웨어, 알래스카 등(3명)
  ☞ 유닛 룰 시스템(Unit-rule System) 채택

      : 각 주 다수 표를 획득 정당이 해당 주에 배당된 선거인을 독식


2. 미국 대통령 선거 일정

 

- 1월 3일 : 아이오와주 코커스 실시(코커스 방식 중 최초 주)

- 1월 8일 : 뉴햄프셔 프라이머리(프라이머리 방식 중 최초 주)

- 2월 5일 : 뉴욕/캘리포니아/텍사스/뉴저지 등 22개주 코커스 및 프라이머리 실시

              (슈퍼화요일로 불리우며, 사실상 대선후보 결정일)

              ☞ 총 27개주 예비선거 종료 시점으로 대체적 윤곽 확인 가능

- 6월 3일 : 양당 예비선거 종료

- 8월 25일~28일 : 민주당 전당대회(대선후보 확정/콜로라도 덴버)

- 9월 1일~4일 : 공화당 전당대회(대선후보 확정/미네소타 미니어폴리스)

- 11월 4일 : 대선 본선거(대통령을 뽑을 선거인단 선출)

   ☞ 본선거 당일에는 유권자들은 주별로 개설된 장소에서 투표하나

       대통령 후보가 아닌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선거인단에 표를 던짐.

       선거인단의 과반수를 얻는 후보가 승리하며, 선거는 이날 사실상 종료

- 12월 17일 : 대통령 및 부통령 선출

    ☞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의 형식적 투표에 불과

- 2009년 1월 6일 : 대통령 당선자 선포

- 2009년 1월 20일 : 제44대 미국대통령 취임


3. 미국 대통령 정당별 후보


1) 공화당

   - 데일 허커비(52세)

      전 아칸소 주지사, 침례교 목사 출신

     공화당 핵심 지지층인 기독교 우파의 지지를 받고 있음

     낙태와 동성애, 총기규제를 강력히 반대함


   - 그 외, 미트 롬니(전 메사추세츠 주지사, 몰몬 교도)

      존 메케인(상원의원), 프레드 톰슨(전 상원의원) 등


2) 민주당

    - 버락 오바마(45세)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민주당 상원의원 출신

      2004년 11월 미 역사상 2번째 흑인 상원의원 선출(일리노이주)

      정식 이름은 버락 후세인 오바마로 무슬림 할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공화당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연상시키고자 항상 정식 이름을 사용,

      하지만 실제 오바마의 종교는 기독교임


   -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야 워낙 유명하니 패스~

   

                                                                                                           <이상>

P.S.

퍼가실 땐 가급적 덧글 한마디라도 남겨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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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ifs.org/contents/sub3/life.php?method=info&searchKey=&searchWord=&offset=&sId=2040#content
17대 대선과 한국의 정당정치
 저자 김욱  발간일 2007/12/04


한 국 민주 정치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정당의 미발전, 혹은 낮은 제도화 수준이다. 우리의 민주 정치 경험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한국 정당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편, 정당 및 정당정치가 민주정치 과정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중요성을 감안할 때, 한국 정당에 대한 잦은 비판과 실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본고에서는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국의 정당정치가 드러내는 문제점을 살펴보고 정당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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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민주 정치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정당의 미발전, 혹은 낮은 제도화 수준이다. 한국 정당의 다양한 문제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핵심은 대중적 기반의 취약함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사회(유권자)와 국가(정부)를 연결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권자의 지지 기반이 취약한 정당이 제대로 그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우리의 민주 정치 경험이 일천하며, 정당의 제도화에는 비교적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한국 정당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과도한 기대 수준이 그동안 한국 정당이 조금씩 이룩해 온 발전을 간과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당 및 정당정치가 민주정치 과정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중요성을 감안할 때, 한국 정당에 대한 잦은 비판과 실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한국의 정당정치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먼저 주요 정당의 경선 과정에서 소위 민심을 반영한다는 명분 아래 여론조사 결과를 상당 부분 반영하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러나 일견 민주적으로 보이는 이 제도는 분명 정당정치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틀림없다. 한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데 당원 혹은 정당 지지자의 의견 외에 일반 여론을 반영하는 것은 정당의 존재 의의를 무색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이러한 여론의 반영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미국의 개방형 예비선거 (오픈 프라이머리; open primary) 사례를 들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지적해야 할 사실은 개방형 예비선거가 일반 여론을 반영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제도는 유럽의 정당과는 달리 회비 내는 당원 대신 심리적 정당 지지자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 정당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특정 정당의 지지자라고 선언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예비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방식이다. 그냥 무작위로 일반 유권자의 선호를 반영하는 우리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정당정치의 의미를 퇴색시킨 또 하나의 사건은 물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무소속 출마 선언이다. 한나라당 경선을 거치지 않은 이 후보가 선거를 50여일 앞두고 탈당을 통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일부에서는 이 후보의 출마 자체를 정당정치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이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탈당을 하고 무소속 후보로 나왔기 때문에 출마 자체는 원칙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정당 기반이 없는 이 후보에게 우리 유권자가 무려 20%에 달하는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직도 우리 정치와 선거가 정당을 중심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특정 정치인 개인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또 한 가지 한국 정당의 고질병이 드러났는데, 바로 정당의 잦은 변동이다. 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겉모습을 바꾸었으며, 문국현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창조한국당이 급하게 만들어졌다. 또한 최근에는 원래 뿌리가 하나였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후보 단일화 및 통합 협상을 진행하다가 결렬한 상태이다. 이러한 잦은 정당의 변동(분열, 통합, 창조, 개명)은 한국 정당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 즉 대중적 기반의 취약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한국 정당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정당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제도적 틀을 바꾸는 일이다. 정치 제도가 행위자의 인센티브 구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치적 행동과 행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제도 변화의 효과를 정확히 분석하여 예측하는 일 (소위 “제도 공학”, institutional engineering)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적 방안에 대한 지나친 과신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에 많은 제도적 방안들이 논의되어 왔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권력구조의 개편과 선거제도의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구조 개편 문제는 년초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으로 또 다시 수면으로 부상하였는데, 사실 이 문제는 한국 민주정치의 공고화와 관련하여 이미 많은 논의가 진행된 바 있다. 필자의 개인적인 입장은 의원내각제가 민주정치의 안정화를 위해서 그리고 정당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한 정부형태라고 생각한다.

다만 과연 현 시점에서 의원내각제 개헌이 가능한지, 그리고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먼저 대다수 국민들이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의원내각제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의원내각제의 올바른 작동을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제도화 및 활성화가 전제조건인데 아직 한국의 정당정치는 그리 성숙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제도란 문화를 반영함과 동시에 문화와 행동을 유도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의원내각제의 도입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선거제도상 비례대표제의 강화)이 오히려 한국 정당정치의 발전을 앞당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정치적 행위자의 인센티브 구조와 행동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제도적 틀은 선거제도이다. 특히 정당정치의 발전이나 정책선거의 실현 등과 관련하여 선거제도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선거 경쟁의 룰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경쟁의 당사자인 정당의 행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중심으로 되어 있는 한국의 선거제도가 개혁이 필요하며, 그리고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개혁의 방향성이 비례대표제의 강화이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단순다수제가 인물 중심의 경쟁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비례대표제는 정당간 정책과 이념 대결을 유도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개혁의 구체적 방안으로는 독일식 선거제도가 실현가능성과 효과성 양 측면에서 가장 적절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독일식 선거제도가 갖는 매력은 겉모습은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형이지만 실제 운영 면에서는 비례대표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이미 지역구를 갖고 있는 현직 의원들의 반대를 어느 정도 무마하면서, 동시에 비례대표제의 긍정적 효과를 최대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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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kind=rank_code&keys=2&id=162063

사회통합위, 시도별 조직 800명 규모

´학식있고 덕망 높은 인사´ 전국 16개 시도별 50명씩 추천
청와대 "아직 논의수준…지역조직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도"
2009-06-30 08:49:26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강화와 국민 소통·화합을 위한 일환으로 준비되고 있는 ‘사회통합위원회’의 규모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위원회는 전국적으로 출신이 고르게 분포된 사회 저명인사 50여명으로 구성되고 산하에 4개의 전문위원회를 둬 120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 본 위원회와 별도로 전국 단위로 시·도별 조직인 지역사회통합협의회를 구성한다.

지역사회통합협의회의 규모는 전국 16개 시도, 각 시도별 50여명을 추천받아 800여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참모는 <데일리안>과 전화통화에서 “지역에 학식있고 덕망이 높은 인사들을 모실 것”이라며 “본 위원회와 그 직속 전문 위원회와는 별도의 기구로 산하 지역 조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아직 확정된 내용은 아니고 여러 가지 논의되고 있는 안 가운데 하나”라며 “실제 지역사회통합협의회를 구성하는 가운데서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회통합위는 사회 갈등해소, 차별 요소 제거, 양성 평등 구현 등을 목표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관계 부처와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사회통합위와 비슷한 기구로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자가 만든 민주화추진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관련자 증언을 듣고 ‘광주사태’에 민주화 운동의 성격을 부여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정부의 사과와 피해자 보상 등 치유책을 마련키도 했다.

한편, 올해 초 논의되던 사회통합위원회가 ‘위원회 난립 논란’으로 고개를 숙이다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이 대통령이 ‘중도 강화론’을 들고 나오면서 이념·계층·지역·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8월에 신설할 예정이다. [데일리안 = 동성혜 기자]

[동성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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