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1000만~3300만원…내부에 욕실·화장실 갖춰 한달이면 설치 가능…건축 인·허가 필요없어 '인기'
< '미니하우스' : 이동식 >
건축비가 저렴하고 이동이 가능해서 미니별장 농막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미니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주)스마트하우스가 제작한 미니하우스 샘플. 스마트하우스 제공
평소 전원생활을 꿈꿔왔던 자영업자 김모씨(47)는 최근 강원도 법흥계곡 인근에 300㎡ 규모의 땅을 매입했다. 최소 1억5000만~2억원 가량이 들어가는 전원주택 건축비 로 고민하던 그는 1000만원을 들여 20㎡(6평) 규모의 ‘미니하우스’를 설치했다.
김씨는 “주말에 가끔 머무르는 공간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한다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외관도 전원주택과 큰 차이가 없고 생활하는 데도 불편이 없어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건축비가 비싼 전원주택이나 펜션을 대체하는 미니하우스가 새로운 ‘리조트 주거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격이 저렴한데다 이동도 가능해 미니별장, 농막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알려지고 있어서다.
◆전원주택·펜션 대체용 실속주택
미니하우스의 정확한 정의는 ‘이동식 주거형 가설 설치물’이다. 미니하우스의 태동기인 5~6년 전에는 주로 컨테이너를 개조한 형태의 미니하우스가 주류를 이뤘지만, 지난해부터 조립식 형태의 목조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목조형 미니하우스는 바닥면적 20㎡(6평), 25㎡(8평) 규모가 대부분이다.
가격은 바닥면적의 크기에 따라 가구당 1000만~3300만원 선이다. 통상 2억원 안팎의 전원주택이나 2억5000만~3억원가량이 들어가는 펜션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에 주말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이동이 가능해 적당한 부지만 있으면 설치할 수 있다. 20㎡짜리 미니하우스는 별도의 농지전용이나 건축 인·허가 절차가 필요 없어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미니하우스 제작업체인 스마트하우스의 이영주 대표는 “농막으로 분류돼 가설물 설치 신고만 하면 어느 곳이든 설치할 수 있다”며 “귀농이나 주말 레저를 즐기려는 전원주택 수요자나 펜션 영업을 추진하는 투자자들이 투자비가 적게 드는 미니하우스를 대체 상품으로 찾는 추세”라고 전했다.
◆주문부터 설치까지 한 달이면 ‘뚝딱’
시중에 나와 있는 미니하우스는 크게 목조형과 컨테이너 개조형 등으로 나뉜다. 업계에 따르면 미니하우스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들은 스마트하우스, 핀란드하우스, 큐브디자인개발, 휴먼C&D 등이 대표적이다.
주문에서 현장 설치까지 2~5주일 정도 걸린다. 목조형 미니하우스의 경우 습기에 강한 캐나다산 삼나무나 가문비나무 등을 사용, 여름 장마철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 업체들의 설명이다. 내부는 옵션에 따라 침실, 욕실, 화장실 등이 설치된다. 수도나 전기를 끌어 쓸 수도 있다.
가격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통상 20㎡ 기준 1500만원 안팎, 25㎡는 3000만~3300만원 선이다. 이 중 스마트하우스는 시장 확대를 위해 1500만원짜리 20㎡형 미니하우스를 1090만원에 공동할인 방식으로 판매하는 특판 세일을 진행하고 있다.
전원주택컨설팅업체인 광개토개발의 오세윤 대표는 “최근 평창 등 펜션 밀집지역에서는 미니하우스를 단체로 구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시사IN 차형석 아시넬리 탑에서 내려다본 볼로냐 전경. 붉은 벽 돌로 지은 건물이 많아 ‘붉은 도시’로 불린다.
이런역사적전통을가진볼로냐는협동조 합이발달한지역으로유명하다. 볼로냐대 학스테파노자마니교수에따르면,볼로냐 가주도(州都)인 에밀리아로마냐주는 1950년대만 해도가난했다. 인구430만명 인이주는이제1인당 소득이4만 유로(약 6100만원)에 이를정도로윤택해졌다(51쪽 상자기사참조). 그는“그 중심에협동조합 이있다”라고 말한다. 8000개에 이르는협 동조합은에밀리아로마냐에서생산하는경 제활동의30%를 차지한다. 볼로냐만한정 할경우,협동조합경제의비중이45%까지 올라간다.
20년 가까이이탈리아에서살고있는교민 김현숙씨에게도협동조합은친숙하다. 김 씨는“어디를 가도협동조합을접한다. 택 시기사들도협동조합을만들어운영한다. 이곳사람들은‘시장에 간다’는 말대신‘꼽 (coop)에 간다’는 말이입에붙었다”라고 말 했다. ‘꼽’은 협동조합(꼬페라테)을 줄인이 탈리아말이다.
ⓒ시사IN 차형석 감자·양파를 재배하는 농민 협동조합 코메타는 생산에서 납품까지 공동으로 관리한다. 위는 코 메타에서 작업하는 협동조합 직원들.
코메타는조합원참여를중요시한다. 3년 에한번씩조합원총회를열어7인 관리위 원회를뽑고,이중에서조합대표를선출한 다. 별도로3인의 재무위원회를두고,7인 관리위원회가재무위원회를감독한다. 중 요한투자사항이생기면7인 관리위원회 에서결정하고조합원총회를따로열기도 한다. 매년이익의3%를 조합기금으로적 립하고재투자에사용한다.
협동조합은때로자회사기업을둔다. 그라 나롤로(Granarolo)는 한낙농협동조합이 세운낙농기업이다. 조합원이1000명에 이르는낙농협동조합이세운이기업은이 탈리아에서우유시장점유율1위, 요구르 트점유율2위를 기록하고있다. 협동조합 이세운이회사의주요기능은제품품질을 고르게유지하고,출하가격을조절하는일 이다. 회사기술자들이1년에 두번목장을 방문해품질관리를한다. 법에서정한기준 보다더엄격하게품질관리를한다. 공장에 서원유를거두어우유·생크림·치즈 등으로 가공한다(한국에도 이곳에서생산한치즈 를수입하는업체가있다). 홍보담당인클 라우디아실바니씨는“좋은 우유를생산하 면더많은이윤을낼수있다. 이윤분배는 1년에 2회 여는총회에서결정한다”라고 말 했다.
실바니씨는“협동조합 기업은일반기업과 문화가다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한다 국적IT 기업에서7년가량 일하다이회사 로이직했다. “이전 회사에서는개인간경 쟁이무척심했고,업무량도너무많았다. 이곳은서로협력하는분위기가강하다. 서 로힘을합하고여유로우면서도일정정도 품질을유지하는것. 그게큰장점이다”라 고말했다.
회사구내식당에는‘탄자니아 어린이’ 사진 이붙어있다. 이회사가하는‘아프리카 밀 크프로젝트’에 따른것이다. 2004년부터 10년 계획으로탄자니아농민을교육해낙 농기술을전파하고협동조합을설립하는 것을돕고있다. 이를통해탄자니아사람2 만3000명을 자립할수있도록만드는게목 표라고한다. 사회에기여하는것. 이는협 동조합의주요원칙가운데하나다.
ⓒ시사IN 차형석 급식 협동조합 캄스트에서 운영하는 식당. 캄스 트는 식당을 1200여 개 경영한다.
협동조합은개인이혼자서는이룰수없는 목적을이루기위해여럿이힘을합하는것 이다. 마찬가지로개별협동조합이하기어 려운일은협동조합끼리협력해추진한다. ICA(국제협동조합연맹)도 ‘협동조합 사이 의협동’을 강조한다. 볼로냐의협동조합들 이컨소시엄을구성한‘카라박’ 프로젝트를 예로들수있다. 노동자협동조합인카디 아이(CADIAI), 급식협동조합캄스트 (CAMST), 건축협동조합치페아(CIPEA) 등 5개 협동조합이컨소시엄을구성해유치원 10개를 지었다. 각유치원에카라박1, 카라 박2, 이런식으로번호를매겼다. 유치원을 짓는데드는돈을협동조합이공동으로부 담하고,운영비는지방정부에서지원받는 다.
유치원설립은각협동조합의특성을발휘 하기좋은프로젝트였다. 교육과의료지원 서비스를주로해온노동자협동조합카디 아이에서는유치원교사와직원을파견하 고,급식은학교급식경험이많은급식협 동조합캄스트가담당하기에적합했다. 카 디아이의라라푸리에리씨는“시에서 부지 를제공하고운영비를지원하는대신20년 후에유치원소유권을시로이전하기로했 다. 20년 동안우리는조합원의일자리를 얻는다. 카라박유치원을계속짓고있다. 협동조합이협동해얻어낸성과다”라고 말 했다.
‘일과 삶의균형’ 중시
푸리에리씨와‘카라박6’ 유치원을방문했 다. 유치원지붕에태양열집열판이보였 다. 건축자재도친환경재료를사용했다고 한다. 12~36개월 아이78명이 다니는카라 박6에는 교사가15명이다. 유치원교사인 다니엘라도미니카과란토씨는카디아이 조합원이다. 출자금으로1800유로(약 270 만원)를 냈다. 더이상일을할의사가없으 면출자금을돌려받는다. 과란토씨는출산 때문에잠시일을쉬었다. 카디아이는임산 부조합원에게다섯달동안임금의일부를 지원한다. 임신기간에는근무시간을유연 하게조정할수있다. 카디아이가‘일과 삶 의균형’을 중요하게여기기때문이다. 그녀 는“이전에는 초등학교에서장애인아동을 돌보는일을했다. 출산이후카라박6에서 일하게되었다. 이곳에서일하게돼행복하 다”라고 말했다. 여성1076명과 남성170 명이노동자협동조합카디아이에서교육 과의료서비스와관련한일자리를얻고있 다.
9.15 정전사태로 인해 전력공급의 안정성 문제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국지적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분산형 전원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분산형 전원이란 원자력과 화력발전 등 대규모 발전원 대신 소용량 발전 시스템을 말한다. 태양광, 바이오, 풍력, 연료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원과 구역전기사업, 소용량 자가용 가스·디젤발전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분산형 전원의 최대 장점은 전체 전력계통과 분리돼 자체 생산한 전력을 소비하면서 남는 전력은 전체 전력계통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전사태처럼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경우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전력 피크를 일정 부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분산형 전원의 국내 보급 현황은 미미한 게 현실이다.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정부의 지원 없이는 아직 자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현실상 분산형 전원을 확대하기 어렵기는 하지만, 7000만kW를 넘어서는 전력 소비량을 감안하면 소규모 발전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가 열병합발전
▲자가 열병합발전의 현황과 기대효과= 자가 열병합발전은 에너지다소비 건물(아파트) 또는 산업체에서 자체적으로 발전설비를 도입해 한전으로부터 받는 전력량을 줄일 수 있는 설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저부하 용량으로 설치해서 계절과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하고,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집단에너지 형태의 열병합발전에 비해 송전손실과 열 이송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국내 자가 열병합발전 보급은 1980년대부터 대규모건물 위주로 시작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누진제가 적용되는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급격히 확대됐지만, 전기요금에 비해 연료인 가스요금이 급등하면서 최근 보급실적은 부진한 편이다. 2011년 말 기준 보급현황은 207개소, 17만3000kW로 우리나라 총 발전용량의 0.2% 수준에 불과하다.
자가 열병합발전은 국토해양부 고시 ‘친환경 주택의 건설기준 및 성능’에서 열원설비 중 가장 우수한 시스템으로 평가할 정도로 에너지절감 효과가 크다.
또 소방법 및 건축법, 의료법 등에서 상용전력 사고(정전)에 대비해 일정기준 이상 건물에 의무화된 비상용 예비전원으로 보급되는 디젤발전기를 대체할 수 있어 설치 공간과 투자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도 하다.
아울러 자가 열병합발전은 상대적으로 전력수요가 많고 수전요금이 비싼 하절기에 집중적으로 운전함으로써 전력 피크 경감과 하절기 천연가스 잉여물량 활용으로 에너지수급관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보급을 확대하려면= 자가 열병합발전의 보급을 확대하려면 우선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자가열병합발전협의회는 발전소 건설 회피, 송전손실 감소 등 전력산업에 기여하는 점을 고려해 이에 상응하는 보조금이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상현 자가열병합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인천대 산학협력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 45만원/kW 수준의 보조금 지급이 적정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본의 경우만 해도 초기투자비의 30~50%인 40~60만원/kW을 무상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가열병합발전업계는 또 보급을 저해하는 진입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집단에너지 고시지역 내에 자가열병합발전을 설치하고자 하는 경우, 관련법에 의거 지식경제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택지가 집단에너지 고시지역으로 지정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법에 의해 신규보급이 규제되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설명이다.
아울러 연료가스 요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 사무국장은 “자가 열병합발전은 동고하저의 천연가스 계절적 수요편차 완화에 크게 기여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며 “냉방용 가스요금이 정책적으로 할인되고 있는 것처럼 하절기에 한해 자가 열병합발전 요금을 냉방요금 수준으로 할인 적용한다면 하절기 발전용 가스발전을 촉진해 천연가스의 효율적인 수요관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구역전기사업
◆구역전기사업의 보급현황= 우리나라는 분산형 전원 보급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구역전기사업제도를 2004년 7월부터 도입했다. 이 제도는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받지 않고 구역전기사업자가 공급구역 내 발전기를 설치해 직접 전력과 냉난방용 열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것으로, 제도 도입 초기에는 32개 구역에서 26개 사업자가 구역전기사업 허가를 얻었지만, 현재는 17개 구역에서 13개 사업자만이 구역전기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발전설비용량은 2009년말 기준으로 73만4700kW로, 전체 발전량의 1.1%에 불과하다.
구역전기사업의 장점은 수요지 인근에 열병합발전소를 건설함으로써 송전선로 건설비용과 송전손실을 줄일 수 있고, 높은 효율로 연료사용량을 줄임으로써 대기오염 물질을 30~40%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구역전기사업을 정착을 위한 제도개선방향=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구역전기사업이 침체된 이유는 예상과 달리 수익성이 크게 저하됐기 때문이다.
수익성 저하의 근본 원인은 2008년 이후 연료비용이 급등했지만 전기요금과 열요금을 제대로 인상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우리나라 전기요금과 열요금은 정부가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연료비가 올랐다고 해서 사업자가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때문에 구역전기사업자들은 구역전기사업자용 발전기에 대해서도 중앙급전발전기로 지정해 용량요금(CP)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역전기사업자의 발전설비도 집단에너지시설과 동일하게 중앙급전발전기등록기준의 기술적 특성을 모두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급전발전기에서 제외돼 있어 정부의 전력예비력에도 빠져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구역전기협회 측은 또 전력거래시장 거래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는 6월부터 9월까지만 거래가 가능하지만, 열수요가 미미한 5월~10월까지 확대할 경우 값비싼 LNG발전소의 운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이들은 지역별로 차등요금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역전기협회 관계자는 “현재 지역난방공사 요금을 준용하고 있지만, 각 사업자별 해당지역의 특성과 사업자 상황을 고려한 적정요금 산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신재생에너지
▲국내 신재생에너지 공급현황= 2010년 기준으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공급비중은 2.61%에 불과하다. 2005년 2.13%에서 5년 동안 0.48%p 증가하는데 그쳤다.
신재생에너지원별 공급비중을 보면 폐기물이 70.9%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수력(11.6%) ▲바이오(11.0%) ▲풍력(2.6%) ▲태양광(2.4%) ▲연료전지(0.6%) 순이다. 발전량기준으로는 수력이 62.6%로 가장 많고, 풍력(13.9%), 태양광(13.1%), 매립지가스(6.8%), 연료전지 (3.3%) 순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 12월 제3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30년 1차 에너지의 11%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는 그린홈 100만호보급사업, 일반보급보조사업, 지방보급사업 등 보조사업과 융자 및 세제지원, 공공기관 신재생에너지설비 설치의무화, 발전차액지원제도, 설비인증 및 표준화, 전문기업제도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보급보조, 융자지원, 지방보급사업의 경우 2009년까지 1조9592억원이 투자됐다. 2010년 한 해 동안만도 신재생에너지 R&D와 보급, 발전차액지원 등에 8000억원이 지원됐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 방향= 정부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불구하고신재생에너지의 보급 확대가 가시화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 신재생에너지 정책 화두를 ‘체감’과 ‘공생’으로 전환했다.
우선 일상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설비를 접할 수 있도록 공장, 항구, 고속도로, 학교, 군대 등에 신재생에너지설치를 확대하고, 월 600kWh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는 전력다소비 가구를 대상으로 자비부담 없이 태양광발전설비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햇살가득 홈’ 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또 앞으로 주민이 직접 신재생에너지사업모델에 참여하는 주민참여형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지역주민과 발전사가 SPC 지분을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신재생에너지사업을 위한 지방채를 주민에게 발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올해부터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를 도입해 발전사업자로 하여금 총발전량의 일정비율을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토록 했다.
하지만 의무공급기관들이 얼마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부가 의무공급기관들의 RPS 이행비용을 전기요금으로 보전해둔다고는 하지만 발전회사들은 신재생에너지설비를 늘리고 싶어도 환경파괴와 소음 등의 이유로 민원과 부처간 불협화음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설비 확충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또 자체조달이 어렵다면 외부에서 공급인증서(REC)를 구매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상황이 녹록치만은 않다. 민간 역시 인허가와 장소적인 제한으로 인해 신재생에너지설비 설치물량이 많지 않고, 경기침체와 투자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시장에서 거래될 공급인증서도 많지 않을 것이란 게 발전사들의 얘기다.
민간 투자자들 역시 ‘예측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경제성 분석이 어려워 금융권으로부터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인도 최초의 총리 네루가 독립 투쟁 시절 감옥에 갇혀 지내며 매일 어린 딸(훗날 인도의 수상 인디라 간디)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 ‘세계사 편력’에 실린 3·1 운동에 관한 내용.
"3.1 운동은 조선 민족이 단결하여 자유와 독립을 찾으려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일본 경찰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숭고한 독립운동이었다. 조선에서 대학을 갓 나온 젊은 여성과 소녀들이 학생 신분으로 투쟁에 참가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네가 듣는다면 틀림없이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다."
◈ 민족대표 33인은 국내 대표…또 다른 독립선언서들
흔히 3·1운동, 독립 선언하면 파고다 공원과 민족대표 33인을 대표격으로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아는 민족대표 33인은 국내 대표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1919년 3월 1일을 전후하여 국내뿐 아니라 동경, 길림, 용정, 미국, 하와이, 시베리아, 대만, 상해 등 국내외에서 70여 종의 서로 다른 독립선언서가 발표된 것으로 전해진다. 발견된 것은 20여 종 정도.
이 중에는 <대한독립여자선언서>도 있다. 1982년 일본정부의 비밀문서 속에서 일본어로 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순한글 원본이 1983년 11월 미국에 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여사의 로스엔젤레스 자택에서 발견되었다. 발표된 곳은 중국 지린 - 길림(吉林)성일 것으로 추정된다.
"슬프고 억울하다. 우리 대한 동포시여, (우리 여성도) 같은 국민, 같은 양심의 소유자이므로 주저함 없이 살아서는 독립기 아래서 활기 있는 새 국민이 되고 죽어서는 구천에서 수많은 선철을 찾아가 모시는 것이 우리의 제일가는 의무이므로…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 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동포, 동포시여 대한독립만세”
3·1운동과 관련된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찾아가 만나보자.
평안북도 선천지역의 만세운동을 이끈 차경신 선생. 차 선생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19년 2·8 독립선언운동에 참가한 뒤 '여성 독립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김마리아 선생과 함께 비밀리에 귀국해 고향 선천에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배포하고 신한청년단과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3·1 운동으로 체포령이 떨어지자 의주로 들어가 청년단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펴고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 투신, 안창호 선생을 도와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다.
마산의 최덕지 여사는 마산 의신여학교 고등과에 다니던 1919년 3월 13일 통영 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나눠주며 민족주의운동에 뛰어들었고 조직적인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펼치다 4차례 옥살이를 했다. 옥에서도 단식 투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무장 투쟁에 나선 여성 독립투사들도 있다. 부산 동래 일신여학교(동래여고) 출신인 박차정 여사는 근우회, 의열단을 거치며 독립투쟁을 하다가 1939년 2월 장시성 곤륜산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1944년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순국했다. 1940년 9월 중국에서 창설된 광복군 490여 명 중 17명이 여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남자현 여사는 평범한 주부였다고 전해진다. 남편이 의병 투쟁에 나서 전사하자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뛰어든다. 훗날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로까지 불리며 무장 투쟁에 참가했고 국제연맹의 조사단 앞에서 손가락을 잘라 '한국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쓰고 1925년에는 사이코 마코토 조선 총독부 총독 암살을 시도하다 체포돼 고문 중 단식투쟁. 숨지기 직전 병보석으로 출옥해 하얼빈의 한 여관에서 사망. 숨질 때 남긴 한 마디는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
◈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
어제 민족문제연구소로부터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18년 몸부림친 기록을 받아 살피다 보니 참 아프다. 제목부터 '상식과 정의를 향한 기록'이다. 우리 사회가 잘못된 역사 청산의 문제를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내팽개치고 외면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또 친일 세력이 득세하면서 일본 학자들이나 친일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근대사 특히 독립운동사가 몹시 축소되고 왜곡됐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라도 밝혀내고 밝힌 것이 국민 모두에게 전파되도록 힘써야 한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한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재야 사학자 임종국 선생은 조지훈 선생의 제자로 자신의 온 생애와 재산을 친일연구와 친일 잔재 청산에 바쳐 1989년 11월 세상을 떴다. 1966년 발간한 친일문학론 친일에 대한 최초의 실증연구 저술 1,500부쯤 찍었는데 일본에서 1,000부는 사갔다고 한다. 그 저술의 역사적 가치를 일본 학자들이 먼저 알아본 것. 1976년 와세다 대학 오무라 마쓰오 교수가 일본어로 번역해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친일의 세력들이 수구 기득권 층이 되고 정작 선생은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가도록 가난하게 살다 세상을 떴다.
임종국 선생의 유고에 실린 당부
"친일한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발본색원의 과정이 없는 한 민족사회의 기강은 헛말이다. 민족사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임을 면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
독립선언서 공약 삼 장을 읽어보자.
하나. 오늘 우리들의 이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번영을 위하는 겨레의 요구이니, 오직 자유의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한순간에 다다를 때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시원스럽게 발표하라.
하나. 모든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들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열도가 오사카를 주목 중이다. 오사카에서 구태 타파의 일본 부활 시그널을 목격해서다. 정확하게는 ‘하시모토 현상(신드롬)’이다. 하시모토 도루는 ‘젊음’의 상징 아이콘이다. 개혁 대상으로 떠오른 늙은 구태·기득권 세력에 당당히 맞서는 인기 절정의 뉴스 메이커다. 차세대 정치 지도자로 급부상하며 열도 사회와 정계를 폭풍 속으로 유도했다. 인기는 상상 초월이다. 광범위한 지지 중 유독 청년 그룹의 응원 목소리가 높다.
정치인 인기 순위에선 단연 1위다. 산케이의 2012년 신년 기획 차기 총리 후보 순위에서 1위(21.4%)를 차지했다. 극우 망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2위, 9.6%)를 크게 앞섰다. 이상적인 지도자 랭킹에서는 5위에 꼽혔다. 메이지유신 기획자인 사카모토 료마를 비롯해 역사·은퇴 인물을 뺀 현역 중 1위다. 아사히 조사(총리에 어울리는 인물)에서도 2위에 올랐다. 고질적인 정치 혐오가 새로운 신인 발굴로 이어진 결과다. 정치인 중 유일하게 지지율이 뛰는 인물이다.
시대 개혁의 과제를 부여받은 그는 1969년생이다. 노객들이 판치는 일본 정계에선 극히 젊다.지지 근거는 다양하다. 우선 명확한 피아(彼我) 구분이다. 주된 공격 대상은 이미 사다리 위를 독점한 늙은 기성세대다. 이들이 지금의 일본을 망친 원흉이라고 질타한다. ‘신의 직장’이자 ‘철밥통’을 움켜쥔 공무원 사회가 대표적이다. 제대로 된 복지가 안 되는 핵심 장벽이 전달 주체인 공무원의 안일한 세태 대응과 불감증이란 지적이다. 반대로 허점투성이 복지 시스템과 세금 누수에 따른 청년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은 위로 상대다.
이 때문에 기성세대의 상징인 단카이(團塊) 세대에 집중된 그간의 복지 수혜에 메스를 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노소·빈부 격차 등의 절망감에 좌절하고 정치에 무관심하던 청년 세대를 설득해 낸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기존 정치도 격파 대상이다. 파벌과 돈으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지키던 정치 관행에 제동을 건 주역이다. 스스로 집단·배경주의를 중시하는 일본 정계에선 비주류로 기존에 맞서 성공 스토리를 썼다. 강력한 리더십의 주인공답게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으로 일본 정치의 고질병이던 유약한 리더십에 희망의 불씨를 던졌다.
‘철밥통’ 공무원 사회 뒤흔들어
성장 배경과 사회 이력도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 부친은 신분 차별이 여전히 공고한 최하층 천민집단(部落民) 출신에, 그것도 야쿠자로 살아왔다. 부친의 자살 후 모자가정에서 자라나는 동안 가난은 익숙한 친구였다. 그렇다고 좌절은 없었다. 일찍부터 고학하며 명문대(와세다)에 입학했다.
대학 때는 현재 부인과 동거해 일찍 아버지가 됐다. 지금은 7남매 가장으로 더 유명하다. 1994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공중파에 고정 출연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쌓았다. 이때부터 튀는 코멘트와 소탈한 외모 및 자상한 가정사 등이 어울리며 탤런트적인 기질을 일거에 발산했다. 2007년 정치 신인 하시모토는 고향 오사카에 출사표를 던졌고 승리하며 부(府)지사에 당선됐다.
표심은 틀리지 않았다. 공약 실천은 첫날부터 단행됐다. 예산을 삭감(1000억 엔)하기 위해 자신의 월급부터 30% 줄였다. 이 밖에 낭비 방지와 비용 절감 차원의 수많은 개혁 과제에 손을 댔다. 우선 타깃은 공무원이었다. “당신(공무원)들은 파산회사 종업원”이라며 “죽을힘으로 개혁하고 함께 죽자”고 강조했다. 반발은 거셌다. 복지 전달 체계와 관련된 시민단체·노조 등과는 사사건건 부딪쳤고 독재자란 별명까지 얻었다.
타협은 없었다. 연일 강공 드라이브를 날렸다. 그로부터 2년 후, 오사카는 흑자로 돌아섰다. 인기가 치솟았다. 지지율은 80%대의 고공행진을 반복했다. 정치권에선 꽤 까다로운 인물이다. 정치 데뷔는 자민·공명당 추천이었지만 2009년 총선에선 민주당을 지지했다. 민주당이 헤매자 2010년엔 스스로 창당에 나섰다. ‘오사카유신회’의 탄생 배경이다. 이후 오사카부(府) 의회선거에 도전해 51%의 의석까지 확보했다.
2011년 이후 하시모토의 행보는 열도 전체를 가시권에 두기 시작했다. 계기는 2011년 11월의 이른바 ‘더블선거(오사카부·오사카시)’ 동시 승리였다. 부지사였던 하시모토가 한 단계 낮춰 도전한 오사카시 시장직과 측근(마쓰이 이치로)의 부지사직 모두에서 이긴 사건이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이 공동 지원한 단일 후보를 현격한 격차로 물리쳐 ‘오사카의 반란’으로도 불린다. 당시 공약은 파격적이었다. 오사카부와 시를 합친 오사카도(大阪都) 구상 계획이 대표적이다. 행정을 없애 비용 절감, 의사결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일본 핵 보유는 필수’ 지론
시장 취임 후 그의 행보는 한층 탄력을 받는다. 공약대로 개혁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당선 직후 자신의 월급(30%)과 퇴직금(50%)을 삭감했다. “오사카 문제는 전부 오사카 시청에 있다”는 발언에서는 공무원을 ‘세금 갉아먹는 흰개미’로 표현한 평소 지론마저 확인된다. 인원 감축(30%, 1만2000명)과 월급 삭감(1인당 최종 30%)이 구체 목표다. 퇴직 공무원의 낙하산 은신처였던 100여 개의 외곽단체도 폐지 대상에 올랐다.
그의 정치 철학은 보수우익이다. 기존 정당이 우왕좌왕할 정도로 뚜렷한 색깔 구분이 힘든 하시모토지만 우파 세력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가령 부지사 시절 그는 군국주의 부활 저지 차원에서 만든 국가(가미가요) 제창 금지 조례를 바꿔버렸다. “일본인이면 애국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전쟁 원죄 때문에 말을 아끼던 중도파까지 끌어안는 계기가 됐다. 비핵 논리에도 정면 반대다. 주변의 위협에 맞서자면 일본의 핵 보유는 필수라는 지론이다. 조총련계 고등학교에 주던 보조금도 끊어버렸다.
한국으로선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한국에 진 빚은 없다”는 등 외교적 언사 배려는 기대하기 힘들다. 독재가 필요하다는 평소 발언도 뜨거운 감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2년 이후 ‘하시모토 현상’은 나날이 뜨겁다. 그의 오사카발(發) 개혁론이 가시화될수록 러브콜은 잦아진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정당은 중의원 200명 당선을 목표로 중앙 정계 진출을 공식화했다.
하시모토와 오사카
오사카 복지 거품이 하시모토 키워
하시모토의 급부상은 오사카의 복지 거품이 키웠다. 오사카는 복지 천국이다. 생활보호대상자가 전국 최고다. 일본 평균이 100명당 1.6명에 불과한데 오사카는 6명에 달한다(2011년 7월). 복지병(病) 대량 양산 배경이다. 문제는 누수다. 시 예산(일반)의 17%가 생활보호비로 지급되니 재정은 파탄 직전이다. 하시모토가 공무원을 개혁 대상 1순위에 올린 건 복지병 원인 제공자로 이들을 의심해서다.
생활보호대상자의 불법 수령 사건이 그렇다. 비난 여론은 2010년 터졌다. 오사카 체류 자격을 획득한 중국인 48명이 입국 즉시 생활보호를 신청한 사건이 발각됐다. 법적 문제는 없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감춰진 복지 누수가 곳곳에서 밝혀졌다. 그런데도 공무원 숫자는 전국 1위다. 시민 1만 명당 공무원이 51.4명으로 비슷한 덩치의 요코하마보다 4배나 많다. 이후 생활보호제도의 축소 지향형 재검토와 복지 수혜의 명확한 구분은 한층 지지 여론을 획득했다.
일본 차세대 총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2·사진) 오사카 시장이 ‘보편적 복지’의 핵심제도인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안보·교육 분야에서 극우적인 성향을 보이면서 ‘하시즘(하시모토+파시즘)’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하시모토 시장이 가장 고도화된 복지제도를 꺼내들고 나온 것이다.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 13일 자신이 이끄는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 전체회합에서 총선 공약의 골격을 발표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한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는 보편적 복지의 핵심으로 꼽힌다. 브라질 일부 지역과 아프리카 나미비아 등에서 시범 실시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민주노총과 사회단체 등이 논의에 나서고 있다.
하시모토가 기본소득제를 들고 나온 것은 보편적 복지가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많이 벌여왔다. 이런 나눠먹기식 재정낭비가 비판을 받아왔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공공사업을 없애는 대신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해왔다. 누구에게나 일정한 생활비를 지급하면 수급 자격심사 업무가 생략되는 만큼 관련 분야 공무원을 줄여 그 인건비를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공무원 정원 감축 등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해온 하시모토로서는 기본소득제가 ‘복지’와 ‘개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안인 셈이다. 기본소득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은 일본의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는 2007년 5000만여명이 낸 국민연금 기록이 유실되는가 하면 공무원들이 극빈자들의 생활보호 신청을 거부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사회문제가 된 바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이처럼 부실하게 운용되자 인터넷기업 라이브도어의 전 사장인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 등은 국민연금, 고용보험, 생활보호 등 복잡한 사회안전망을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하시모토의 기본소득제 도입 공약에 일본 여론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셜미디어 트위터에서는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주요국에선 최초가 아닐까”라며 기대를 표시하는 글들이 올라오는가 하면 민주당의 ‘퍼주기’ 공약이나 다름없으며 실현 가능성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사카유신회 공약에는 또 평생 보험료를 내도 재산이 많은 노인에게는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젊은층은 소득이 없을 경우 나이와 상관없이 연금을 받도록 하는 국민연금 개혁방안도 포함돼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을 가진 부유층에 대해 과세하는 자산세(資産稅) 도입도 내놨다.
외교·경제 분야에서는 소비세 증세와 환태평양경제협정(TPP) 추진에 찬성했으며,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미·일·호주 관계강화 등 현실노선을 채택했다.
오사카유신회는 중의원 선거에 300~400명의 후보를 내 200석을 획득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 기본소득제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게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로 보편적 복지의 핵심.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입력 : 2012-02-14 21:35:09ㅣ수정 : 2012-02-15 02: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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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던 래리 페이지(39)는 한 벤처 투자자로부터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받았다. 검색 기술만 있을 뿐 회사조차 설립하지 않은 그에게 과감히 투자한 사람은 앤디 벡톨샤임(56). 역시 벤처로 시작한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창업자였다. 이 돈으로 창업한 구글은 세계 최대의 검색업체로 자랐다. 2004년 기업공개(IPO) 규모만 19억 달러. 당시 추정 기업가치는 230억 달러였다. 지금은 1900억 달러를 넘나든다.
페이지가 투자자를 찾던 시절 서울대 공대를 나온 이경호(43) 박사는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팹리스) 창업을 결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담보조차 없는 그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를 받아 2000년 미국 새너제이에 지씨티세미컨덕터란 회사를 차렸다. 연구개발(R&D)과 영업인력의 대부분은 한국 지사에 있지만 지씨티는 엄연한 미국 회사다. 최근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구글과 지씨티의 갈림길에서 10여 년이 지났지만 국내에서 벤처 창업은 여전히 어렵다. 무엇보다 위험을 무릅쓰고 초기 투자에 나설 에인절 투자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 초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KTB벤처스의 이호찬 이사는 “한국에는 실리콘밸리의 ‘페이팔 마피아(페이팔 창업 멤버 출신의 벤처 투자가)’ 같은 생태계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벤처는 ‘창업→에인절 투자→초기 투자→일반 투자→ IPO’의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 가족·친구의 돈을 끌어모아 벤처를 시작하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갈린다. 실리콘밸리는 에인절 투자자들이 ‘될성부른 나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IPO 직전에야 투자자가 몰린다. 이 이사는 “페이스북이 상장하면 백만장자 1000명은 나올 것”이라며 “거기서 나온 돈이 또 다른 벤처에 투자되는 생태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정보 교류도 실리콘밸리의 강점이다.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로버트 바틀릿(벤처금융 전공) 교수는 “캘리포니아 법에서는 한 기업에서 퇴사한 사람이 곧바로 경쟁업체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며 “경쟁업체로의 이직은 물론 기존 회사에서 연구하던 기술을 갖고 나와 수월하게 창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창업과 인수합병(M&A)을 통해 실리콘밸리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자리 잡고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바틀릿 교수는 “최근 ‘월가를 점령하자(Occupy wallstreet)’고 나선 시위대도 ‘실리콘밸리를 점령하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시위가 부자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라면 벼락부자가 속출하는 실리콘밸리 역시 목표가 돼야 한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건전한 창업 생태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반감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도 벤처 창업자들이 에인절로 돌아오고 있다. NHN 공동창업자 김범수(46) 카카오 이사는 카카오톡 신화를 다시 썼다. 우리나라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구글에 매각한 태터앤컴퍼니 창업자인 노정석(36) 아블라컴퍼니 대표는 티켓몬스터를 설립할 때 투자자로 참여했다. 신현성(27) 티켓몬스터 대표는 회사를 미국의 리빙소셜에 팔아 마련한 돈으로 지난해 노 대표와 함께 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아시아를 설립했다. 한국형 페이팔 마피아의 탄생이다. <본지 2월 7일자 1면>
하지만 실리콘밸리식 벤처 생태계를 이루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투자 규모나 지원 제도에서 격차가 크다. 그래서 작지만 벤처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초 만난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의 에란 야하브(38) 교수는 “학생의 80~90%가 창업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과 소속 50여 명의 교수 중 절반이 자신의 회사를 갖고 있거나 기업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이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 3명을 배출한 이스라엘의 대표적 공대다. 한국 공대생들처럼 의사·공무원시험에 매달리거나 대기업 취직을 생각하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스라엘의 벤처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준 이스라엘 벤처기업협회가 집계한 벤처기업은 8226개다. 한국은 2만6148개로 숫자는 훨씬 많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인구는 770만 명으로 한국(4900만 명)보다 훨씬 적다. 이스라엘이 936명당 한 개의 벤처기업이 있는 반면, 한국은 1873명당 하나다. 성공한 벤처도 이스라엘이 훨씬 많다.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한 이스라엘 기업은 57개다. 중국(164개)·캐나다(149개)에 이어 3위다. 이 가운데 벤처기업인 시가총액 5000만 달러 이하의 ‘나노캡’ 업체는 20개다. 나스닥에 상장한 한국 업체가 8개에 불과하고 대부분 한국전력·포스코 같은 대기업이라 나노캡 기업이 하나도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벤처캐피털의 공격적 운용은 정부의 지원 덕도 있다. 이스라엘은 에후드 올메르트 전 총리가 1990년대 산업노동부 장관이었던 시절부터 ‘요즈마 프로젝트’라는 벤처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40%를 대면 나머지를 정부에서 대준다. 이스라엘의 벤처캐피털인 트렌드라인즈그룹의 토드 돌린저 최고경영자(CEO)는 "수익이 나면 정부 지분을 벤처캐피털이 사간다”며 "실패해도 정부 지분을 갚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2억~3억 달러 규모로 시작한 요즈마 펀드는 최근 30억 달러까지 커졌다. 민간 벤처캐피털 규모는 2009년 현재 9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0.45%에 달한다. 한국은 9억4000만 달러로 이스라엘보다 규모는 크지만 GDP 대비로는 이스라엘의 5분의 1인 0.09%에 불과하다. 이스라엘에서는 벤처캐피털과 비슷한 규모의 에인절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GDP 대비 전체 벤처자금의 비율은 이스라엘이 한국의 10배에 달한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한국 벤처에 모범이 될 만하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청년 창업자들에게 실패를 허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는 초기부터 담보를 요구하는 관행 탓에 실패할 경우 운이 좋아야 ‘가족 돈을 털어먹은 무능력한 가장’이 되고, 최악의 경우 ‘회사를 거덜낸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도 잘 모르는 분야의 벤처회사를 직접 심사해 지원하는 것보다 전문성을 갖춘 에인절 투자자나 벤처캐피털에 혜택을 줘 간접적으로 창업을 돕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이팔 마피아
2002년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팔린 회사 ‘페이팔’ 설립 멤버들이다. 이베이에 페이팔이 매각된 뒤 다시 벤처기업들을 세워 또 다른 성공신화를 일궜다. 페이팔 부사장 출신으로 링크트인을 설립한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페이스북에 과감히 투자한 피터 티엘,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설립한 엘론 머스크, 벤처투자회사 세쿼이아캐피털의 공동경영자로 변신한 로엘로프 보사, 유튜브를 세운 엔지니어 출신 채드 헐리, 스티브 첸 등이 대표적이다.
“오래 전부터 기부에 관심 갖고 있던 중 IT 분야 전문성 갖고 있다보니 해외 동향 많이 살피게 되더라. 3, 4년 전부터 소셜
네트워크 형태의 사회활동 모델이 적극적으로 도입됐다, 코지즈ㆍ키바 등은 이미 자리 잡은 100년 이상의 기부단체보다 훨씬
활발하다.”
6일 안철수재단(가칭) 운영 방향을 밝히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언급한
코지즈(causes)와 키바(kiva)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직접 이름까지 밝힌 안 원장은 자신이 구상한 선순환 구조의
기부모델에 코지즈와 키바가 많은 참고가 됐다고 발표했다.
2007년 설립된 코지즈는 냅스터, 페이스북 등의 사용자와
각 정치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들의 참여로 부터 기반을 다졌다. 1억7000만명에 달하는 코지즈 멤버들이 모은 금액은 4000만
달러 규모로 이는 2만7000여 개의 비영리단체와 50만명에게 지원됐다.
코지즈 멤버들은 지인들을 데려오거나 직접 기부 혹은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면서 인센티브를 부여 받는다. 기부사업 관계자들은 이런 코지즈를 두고 비영리단체를 대신하는 풀뿌리 형태의 기부재단이라고 평가한다.
키
바 역시 기부자와 수혜자를 서로 연결하며 네트워크를 넓혀가는 형태의 기부 모델이다. 2005년 설립된 키바는 개인당 25달러
정도를 기부해 이를 마이크로 파이낸스(소액대출) 형태의 금융사업을 펴는 형태다. 현재 68만7000여명의 기부자가 대출 자금을
내놓아 2억8300만 달러 규모가 형성된 상태. 대출금 회수율은 98.8%에 달한다.
안 원장은 “한 사람이 1달러씩 8바퀴를 돌면 8배가 불어난 8달러가 된다. 기부를 한 사람이 다시 원금을 받으면 또 다른 사람한테 기부를 하게 돼 소액 기부 활성화가 앞당겨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에 대해 재단 이사장을 맏은 박영숙 고문은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거액의 기부가 더 주목받고 있는데 기부 문화가 발달된 선진국들
보면 90% 이상의 국민들이 기부에 지속적으로 가담하고 있어, 이 같은 공익 활동을 기부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월가의 투자라는 관점에서 ‘북한 변수’는 늘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였다. 남북관계나 북미관계가 험악해지면 늘 한국 증시가 출렁이며 주가가 하락하고 심지어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다.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통상 월가의 시각에서는 통일과정에서 한국이 막대한 통일비용 부담으로 아시아 경제 강국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분단 상황에서 상존하는 전쟁 위험성 때문에, 그리고 통일이 된다하더라도 막대한 통일비용 부담 때문에 한국은 이른바 ‘투자하기에는 적합지 않은’ 곳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 유가가 20~30달러를 오가던 2005년에 국제 유가 100달러 전망을 내놓아 세계를 놀라게 했고, 지금은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아 명실상부한 월가의 최대 강자로 등극한 골드만삭스가 최근 색다른 평가를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골드만삭스의 한국계 권구훈 애널리스트가 9월 21일 내놓은 “통일한국, 북한 리스크 재평가”라는 보고서가 그것이다(Goohoon Kwon, "A United Korea? Reassessing North Korea Risks(Part I), 2009.9.21, Global Economics Paper No:188).
보고서는 월가 투자자를 위한 안내 보고서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도발적으로 통일 한국이 앞으로 40년 뒤인 2050년에 GDP 규모로 독일과 프랑스를 추월하여 실질 GDP 6조 5000억 달러로 세계 8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전제- 독일식 경제통합 보다는 ‘중국-홍콩식’ 경제통합
그렇다면 아직도 한반도의 긴장 관계가 통일을 운운하기에는 험악하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기본적인 개선도 이른 감이 있는데 어떤 근거로 통일 코리아의 경제 규모를 전망했던 것일까.
그것은 보고서가 중요한 대목을 전망의 전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제는 적어도 경제적 차원에서만 보면 한반도가 비용이 가장 많이 들었던 독일식 통일 모델을 따르기 보다는, 비용도 최소화되고 경제통합 이후 성장률도 월등한 ‘중국-홍콩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것이다. ‘중국-홍콩식’ 모델은 한 국가 안에 두 개의 경제체제와 정치시스템이 공존하는 모델로서 한반도가 이런 모델을 따라 경제통합을 이루어 간다면 적당한 정책적 뒷받침 아래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통일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가정아래 보고서는 통일 경제 형성과정을 2013년부터 2050년까지 세 단계로 잡고 있다. 첫째 단계는 이행기(Transition Phase; 2013~2027)로 통합과정이 시작되는 단계이고, 둘째 단계는 통합기(Consolidation Phase; 2028~2037) 10년으로 북한 성장이 느리게 진행되는 시기이며, 셋째 단계는 성숙기(Maturing Phase)로 남북한 경제성장률이 수렴하는 시기로 평가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북한의 성장잠재력을 어떻게 보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통합과정을 밟아서 통합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인다 하더라도 어떻게 고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물론 골드만삭스도 지금까지의 북한 경제성장률을 높게 보지는 않고 있고, 이 보고서 역시 한국 자료를 인용해서 평가하고 있는 한 한국의 다른 평가 보고서와 다를 수 없다. 보고서는 북한 생산량이 1992년부터 1998년 까지 20퍼센트나 떨어졌고 1998년부터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워낙 성장 모멘텀이 약해서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미래 전망을 하는 것 역시 북한 데이터 입수의 절대적 한계로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경제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단서는 있지만, 다음의 세 가지 요인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북한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것은 ▶ 풍부하고 경쟁력 있는 노동력, ▶ 남쪽의 자본력/기술과 북쪽의 천연자원/노동력이 만들어낼 시너지 효과, ▶ 전형적인 이행기경제(경제통합) 시기에 발생하는 생산성과 통화가치 상승의 대규모 잠재적 이익 등이다.
골드만삭스가 주목한 3대 통합 효과를 좀 더 보면, 첫째는 북한의 경쟁력 있는 노동력인데, 16세까지 무상교육인데다 “북한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젊고 노동인구 성장률도 빠른” 점을 장점으로 지목했다. 둘째는 북한의 풍부한 자원/노동력과 남한의 자본/기술이 결합한 시너지 효과를 꼽으면서, 특히 GDP의 140배 이르는 북한 천연자원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 반대로 97퍼센트의 광물을 수입하는 상황에서 통합으로 큰 시너지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 번째는 경제이행/경제통합과정에서 보여줄 북한 성장 잠재력이다. 보고서는 동유럽과 구 소비에트 연방에 속한 나라들이 계획경제 붕괴 초기에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지만 이후 연간 6.2퍼센트의 성장률을 달성했고, 중국, 베트남, 몽골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1992~2008년 사이에 연평균 8.4퍼센트의 성장을 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북한의 경우에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빠져 나오는 초기 충격을 90년대에 이미 경험했다고 본다면, 향후 성장률이 동유럽 보다는 아시아 국가들에 가까울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북한의 경제개혁과 남북 경제통합의 맞물리면 보수적으로 잡아도 잠재적 성장률이 7~8퍼센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높아가는 아시아 경제권 위상과 남북 통일경제에 대한 고려
사실 월가에서 보고서가 나왔다고 특별히 소란을 떨 것도 없거니와 남북경제가 통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기대효과는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다. 우리 연구원도 초창기부터 ‘경제규모와 내수 시장의 확대’, ‘자립경제 경제를 위한 자원, 에너지의 확보’, ‘한반도 지정학적 우월성의 복원’, ‘군사비와 무력의 생산적 재배치’, ‘남북 기술협력에 의한 경제 도약’의 가능성 등을 지적한 바가 있고, 한반도 경제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기대효과에 대해 고려를 하고 있다.(새사연, <새로운사회를여는 상상력>,2006, 제 3부 4장, “민족경제 통합의 강력한 기대효과”)
그런데도 골드만삭스 보고서가 주목을 받는 것은 바로 ‘미국 월가’에서 나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도 한때 세계적 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이 2006년 7월 24일자로 발표한 ‘아시아 경제 전망과 전략’ 제하의 보고서에서, 북한의 경제 개혁이 상당히 진전되어 1980년대 후반의 중국과 비견할 만하며 외환 정책 같은 부문에서는 1990년대 초 중국을 이미 넘고 있다고 분석했었다(새사연, “북한은 또다른 동아시아의 기적이 될 것인가? - 시티그룹의 북한 경제 개혁 보고서”, 2006.9.8).
또한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11년 무상 의무 교육 정책에 근거해 문맹률 0퍼센트에 가까운 우수한 주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북한이 또 다른 동아시아의 기적을 낳을 것인지 조심스레 타진해 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내외적인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세계 경제위기로 인해 국제적 경제 지형의 변화가 오고 있으며 아시아 경제권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골드만삭스가 한국경제와 한반도경제의 미래 잠재력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로 인해 싱가폴, 아일랜드, 심지어 일본 독일과 같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받으면서 ‘내수기반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경제 통합으로 인한 내수 기반 확대는 세계적인 경제 환경 격변기에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여전히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면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G20회의를 2010년에 개최하게 되었다고 ‘국운 상승의 획기적인 일’이라며 흥분할 것이 아니다. 자본의 이익만 좇는 월가의 금융회사들조차 향후 남북경제 통합이 가질 수 있는 잠재력에 대해 다양하게 주판알을 튕겨보고 있는 시점에서, 바로 그 이익의 당사자가 될 한국정부는 남쪽 경제의 단기적 회복세를 가지고 G20에서 인정받았다며 기세를 높인다면 세계가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신부님, 목사님, 랍비 세 분이 모금을 하였습니다. 모금이 끝난 후 분배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먼저 신부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땅에 원을 그린 후 돈을 던져 원 안에 들어오는 것은 신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는 제가 쓰겠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땅에 선을 그은 후 돈을 던져 왼쪽에 떨어지는 것은 신을 위해 오른쪽에 떨어지는 것은 제가 쓰겠습니다.” 랍비가 말했습니다. “저도 돈을 던지겠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신의 것이니 그 분이 쓸 것이고 땅에 떨어지는 것은 제 것이니 제가 쓰겠습니다.” (유대인의 유머 중에서 최명덕 수정·보완)
어느 부자 유대인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랍비를 불러 10,000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아직도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을 불러 10,000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생각해 보니 아직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을 불러 10,000 달러를 기증했습니다. 그러고 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는 남은 유산을 자식들에게 상속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갑자기 그는 내세에서도 돈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 분의 성직자에게 각각 자신이 기증한 돈의 20퍼센트를 장례식 날 관에 넣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례식 날 신부님이 2,000 달러를 고인의 관에 넣었습니다. 목사님도 2,000 달러를 관에 넣었습니다. 랍비가 오더니 관에 들어 있는 4,000달러를 꺼내 자기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이름으로 6,000 달러짜리 수표를 써서 관에 넣었습니다. (유대인의 유머 중에서 최명덕 수정·보완)
유대인 유머 중에 돈 이야기가 많다. 위의 이야기는 기금 사용에 대한 유대인의 실용적 지혜(Practical Wisdom)를 보여 준다. 신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죽은 사람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돈이 필요한 것은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위의 이야기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아닐 수 없다. 유대인의 돈에 대한 지혜는 그들의 모금과 모금관리에 대한 기나긴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유대인들은 어느 나라에 가든 제일 먼저 기금을 만들었다. 그 다음에 회당을 세웠다. 중세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일찍이 유대인 마을 있는 곳에 기금 없는 곳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였다(Yad Hahazakah 9:1-3). 기금은 공공선을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모든 마을 사람들은 기부자인 동시에 수혜자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유대인들은 모금과 기금 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오랜 세월 축적하였다.
탈무드 법에 의하면 최소 단위의 기금은 두 명의 모금 담당관(펀드레이저, Fundraiser)과 세 명의 기금 관리 담당관으로 이루어진다. 모금 못지않게 기금 관리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정한 관리가 전제되지 않은 모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랍비 요세는 기금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모금하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잘못된 판단으로 공정성을 잃게 되면 만회하기가 쉽지 않으나 모금하며 겪게 되는 어려움이나 수모는 아무리 혹독해도 견딜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기부금 관리인은 정직하고 널리 알려진 사람,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모금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단연 신뢰이기 때문이다.
탈무드(Baba Batra 8a)는 또한 기부금을 모으는 펀드레이저야말로 영원한 별과 같은 존재로서 기부자보다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유대인 사회에서 펀드레이저의 위상은 대단하다. 누군가가 펀드레이저라면 그는 덕망 있고 실력 있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펀드레이저는 유대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누가 존경할 수 없는 사람에게 돈을 맡기겠는가.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모금은 불가능하다.
기부자들 사이에는 펀드레이저가 자기 집을 방문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펀드레이저가 자기 집을 방문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재력이나 인품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이를 인생에 대한 성공의 척도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성공 신화 이면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유대인의 기부 문화가 있다. 똑같은 재능을 가진 다섯 명의 한국인 유학생과 다섯 명의 유대인 유학생이 같은 조건에서 공부한다고 가정하자. 두 부류 중 어느 쪽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을까? 단연 유대인이다. 왜 그럴까? 기부 문화 때문이다. 한국인 중 두세 명은 유학 생활 중 돈이 떨어져, 시간을 쪼개 일을 하느라 공부에 지장이 생기거나 심하면 중단하게 될 것이다. 반면 유대인은 돈이 없어도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박사까지 공부할 수 있다. 유대인에게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대인을 돕기 위한 기금이 언제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힐렐고등교육기금은 고등 교육을 원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장학금을 제공한다. 유대인이라면 형편에 따라 그에게 적합한 장학 기금을 찾아 사용할 수 있다.
기금은 어려운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기부가 일상화되어 있고 기금이 풍부한 유대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 틈에서도 당당히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금이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하버드는 모든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겠다고 공언하였다. 하버드의 학생이라면 경제적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는 일이 없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하버드에 들어오는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궁극적으로는 기부금에 기초한 장학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학생의 경제 여건에 따라 장학금이 지급되는 장학제도를 갖게 될 때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한국에 유대인 사회 못지않은 기부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명덕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이스라엘학회장, 한국이스라엘연구소장, 한국이스라엘친선협회 이사, 한국이스라엘문화원 이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로 《유대인 이야기》《지도로 보는 이스라엘 역사》《유대교의 기본진리》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