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정]의 [건국강령]에 비춰 본 [대한민국]
surfing log/경제사 2007/08/01 10:18 || [대한민국] 정통성을 생각해 본다 (4) 상해 [임정]의 [건국강령]에 비춰 본 [대한민국] | |||
| 이름 | 원효탄 | 날짜 | 2007-07-06 오전 2:1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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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통성을 생각해 본다 (4) 상해 [임정]의 [건국강령]에 비춰 본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네스북에 올라야 할 나라다. 한 나라의 기틀인 ‚헌법’은 장식품으로 만들어 놓고, 실제에 있어서는 기본적 인권마저도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으로만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주권도 없는 나라에서 헌법은 무엇때문에 자주 바꾸는지? 또 작전통수권도 없는 대통령은 무엇때문에 뽑고 백성들의 세금으로 호사시키는지? 여하튼 또 바꾼다 하니 이번에는 진정 상해[임정]의 법통을 이은 헌법이 제정되어 백성의 뜨거운 애국애족의 힘을 원천으로 하여 민족자주∙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힘차게 열어 갈 것을 뜨겁게 바란다. 차례 1. 들어가는 말 2.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3. 삼균주의(三均主義) 3.1 사상적 뿌리 3.2 객관적 배경 3.3 삼균주의의 현실적 의미 4. 한독당 당의(黨意) 5. 무엇을 할 것인가? 5.1 [대한민국] 현실 5.2 시대적 과제 6.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상해 [임정]은 왜 조직으로서의 귀국이 거부되었는가? KBS가 방영한 역사 스페셜 “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라는 동영상에서 당시 소련군 장교이었던 스티코프씨 수첩기록에 “김구선생이 ‘우리끼리 민족문제 이야기 하는 데 당신은 무엇하러 이곳에 있느냐’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자기는 슬그머니 뒷문을 통해 그곳을 빠져나왔다”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편린들은 오늘 남과 북으로 갈리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군정의 실체를 되새겨 보게 한다. 이른바 “연합국”이라는 미국과 영국은 유럽에서 프랑스 망명정부라던가 폴란드 등 독일 히틀러가 점령한 지역의 저항독립단체들에 대해서는 ‘단체’로서 인정을 하여주었다. 그와는 반대로 오랜 기간동안 피나는 독립투쟁을 하여 온 우리 [임정]은 무시되었다. (참고문헌: 강만길, 조소앙, 임시정부의 목적과 임무, 쪽 163-167) 다만 소련이 우리 항일독립투쟁단체들을 어느정도 일정하게 우호적으로 대했던 사실들만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근거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임정]은 왜 조직적 귀국이 거부되었는가? 이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임정]의 자료를 바탕으로 알아 보고자 했다. 먼저 [임정]의 “건국강령”을 바탕으로, 다음은 [임정]의 정치사상인 [삼균주의], 끝으로 [임정]의 행동주체였던 한독당 당강에 관해 간략히 알아보자. 그리고 그것을 축으로 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늠해 보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 지 나의 바람을 써 보고자 했다. 2.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 [임정]이 “건국강령”을 바탕으로 나라를 세우려고 했다는 것은 세상에 이미 많이 알려진 바와 같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데 도움이 되고자 [건국강령] 전문을 다시 싣는다. 제1장 총강 1. 우리 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 이래로 공통한 말과 글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공통한 민족정기를 길러온 우리끼리로서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조직임 2. 우리 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의 명명한 바 '수미균평위' 하면 '흥방보태평'이라 하였다. 이는 사회각층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가짐을 고르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전, 유지하려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킬 바 최고의 공리임. 3. 우리 나라의 토지제도는 국유의 유법을 두었으니 선현의 통론한 바 준성조지공분수지법하여 혁후인사유겸병지폐라 하였으니 이는 문란한 사유제도를 국유로 환원하라는 토지혁명이다. 우리 민족은 옛 규칙과 새 법을 참작하여 토지제도를 국유로 확정한 것임 4. 우리 나라의 대외주권이 상실되었을 때에 순국한 선열은 우리 민족에게 동심복국할 것을 유촉하였으니, 이른바 "바라건대 우리 동포는 국치를 잊지 말고 굳게 참고 노력하여 마음을 한가지로 하고 다 같이 덕을 닦아서 외국의 모멸을 두들겨부숨으로써 우리 독립을 회복하라" 고 하였다. 이는 전후 순국한 수십만 선열의 전형적 유지로서 현재와 장래의 민족정기를 두들겨 일으킴이니 우리 민족의 남녀노소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임. 5. 우리 나라의 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의 혁혁한 혁명을 일으킨 원인이며 신천지의 개벽이니 이른바 "우리 조국의 독립국임과 우리 민족의 자유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경계하여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하였다. 이는 우리 민족이 3 1헌전을 발동한 원기이며 동년 4윌 11일에 13도 대표로 조직된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임시정부와 임시헌장 10조를 만들어 반포하였으니 이는 우리 민족의 힘으로써 이족전제를 전복하고 5천년 군주정치의 허울을 파괴하고 새로운 민주제도를 건립하여 사회의 계급을 없애는 제일보의 착수였다. 우리는 대중이 핏방울로 창조한 국가형성의 초석인 대한민국을 절대로 옹호하며 확립함에 같이 싸울 것임. 6. 임시정부는 13년 4월에 대외선언을 발표하고 삼균제도의 건국원칙을 천명하였으니, 이른바 “보통선거 제도를 실시하여 정권을 균히 하고 국유제도를 채용하여 이권을 균히 하고 공비교육으로써 학권을 균히 하며, 국내외에 대하여 민족자결의 권리를 보장하여서 민족과 국가의 불평 등을 고쳐버릴 것이니, 이로써 국내에 실현하면 특권계급이 곧 없어지고 소수 민족의 침몰을 면하고, 정치와 경제와 교육권리를 균히하여 고저를 없이하고 동족과 이족에 대하여 또한 이렇게 한다”고 하였다. 이는 삼균 제도의 제1차 선언이니 이 제도를 발양 확대할 것임. 7. 임시정부는 이상에 근거하여 혁명적 삼균제도로써 복국하고, 건국을 통하여 일관한 최고 공리인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과 독립, 민주, 균치의 3종 방식을 동시에 실시할 것임. 제2장 복국 1. 독립을 선포하고 국호를 일정히 하여 행사하고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을 세워서 임시약법과 기타 법규를 반포하고 인민의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행하며 군력과 외교와 당무와 인심이 서로 배합하여 적에 대한 혈전을 정부로써 지속하는 과정으로 복국의 제 1기라 할 것임. 2. 일부 국토를 회복하고 당 정 군의 기구가 국내로 옮기어 국제적 지위를 본질적으로 취득함에 충족한 조건이 성숙할 때를 복국 제2기라 할것 임. 3. 적의 세력에 포위된 국토와 포로된 인민과 침점된 정치, 경제와 말살된 교육과 문화 등을 완전히 탈환하고 평등지위와 자유의지로써 각국 정부와 조약을 체결할 때는 복국의 완성기라 할 것임. 4. 복국기에서 임시 약헌과 기타 반포한 법규에 의하여 임시의정원의 선거로 조직된 국무위원회 로서 복국의 공무를 집행할 것임. 5. 복국의 국가주권은 광복운동자 전체가 대표할 것임. 6. 삼균제도로서 민족의 혁명의식을 환기하며, 해외의 민족역량을 집중하여 광복운동의 총동원을 실시하여 장교와 무장대오를 통일훈련하여 상당한 병력의 광복군을 곳곳마다 편성하여 혈전을 강화할 것임. 7. 적의 침탈세력을 박멸함에 일체 수단을 다하되 대중적 반항과 무장적 투쟁과 국제적 외교와 선전 등의 독립운동을 확대, 강화할 것임. 8. 우리 독립운동을 동정하고 원조하는 민족과 국가와 연결하여 광복운동의 역할을 확대할 것이며 적 일본과 항전하는 우방과 절실히 연락하여 항일동맹군의 구체적 행동을 취할 것임. (*9항과 10항은 퍼 온 글에서 생략되어있음) 제3장 건국 1. 적의 일체 통치기구를 국내에서 완전히 박멸하고 국도를 정하고 중앙정부와 중앙의회의 정식활동으로 주권을 행사하여 선거와 입법과 임관과 군사, 외교, 경제 등에 관한 국가정령이 자유로 행사되어 삼균제도의 강령과 정책을 국내에 추행하되 시작하는 과정을 건국의 제1기라 함. 2. 삼균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시행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민주적 시설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며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의 국유화가 완성되고 전국 학령아동의 전수가 고등교육의 면비수학이 완성되고 보통선거 제도가 구속없이 완전히 실시되어 전국 각 동, 리, 촌과 면, 읍과 도, 군, 부와 도의 자치조직과 행정조직과 민중단체와 조직이 완비되어 삼균제가 배합, 실시되고 경향 각층의 극빈계급에 물질과 정신상 생활정도와 문화수준을 높이어 보장되는 과정을 건국의 제2기라 함. 3. 건국기의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리와 의무는 다음 원칙에 의거하고 법률로 따로 정하여 시행함. 4. 건국시기의 헌법상 중앙과 지방의 정치기구는 다음 원칙에 의거 함. 5. 건국시기의 헌법상 경제체계는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을 확보함과 민족 전체의 발전 및 국가를 건립, 보위함과 민족 전체의 발전 및 연환관계를 가지게 하되 다음에 열거한 기본원칙에 의거하여 경제정책을 추진, 실행함. (1) 대산업기관의 공구와 시설을 국유로 하고, 토지, 광산, 어업, 수리, 임업 소택과 수상, 공중의 운수사업과 은행, 전신, 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 공, 상, 기업과 성시, 공업구역의 공용적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 중소기업은 사영으로 함. (2) 적의 침략, 침점 혹은 시설한 관공, 사유 토지와 어업, 광산, 농림, 은행, 회사, 공장, 철도, 학교, 교회, 사찰, 병원, 공원 등의 산업과 기타토지 및 경제, 정치, 군사, 문화, 교육, 종교, 위생에관한 일체 사유자본과 부적자의 일체 소유자본과 부동산을 몰수하여 국유로 함. (3) 몰수한 재산은 빈공, 빈농 및 일체 무산자의 이익을 위하여 국영 혹 공영의 집단 생산기관 에 충당함을 원칙으로 함. (4) 토지의 상속, 매매, 저압, 전양, 유증, 전조차의 금지와 고리대금업과 사인의 고용농업의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농장생산 소비와 무역의 기구를 조직 확대하여 농공대중의 물질과 정신상 생활정도와 문화수준을 높임. (5) 국제무역, 전기, 수도, 대규모의 인쇄소, 출판, 영화극장 등을 국유, 국영으로 함. (6) 노공, 유공, 여인의 야간노동과 연령, 지대, 시간의 불합리한 노동을 금지함. (7) 농공인의 면비의료를 보급, 실시하여 질병소멸과 건강을 보장함. (8) 토지는 자력자경인에게 나누어줌을 원칙으로 하되, 원래의 고용농, 자작농, 소지주농, 중지주농 등 농인지위를 보아 저급으로부터 우선권을 줌. [건국강령] 인용 끝 *** [건국강령] 출처:<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이처럼 [임정]은 1941년 11월에 [삼균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공포, 그해 12월에 [임시정부관보] 제 72호에 [건국강령] 전문을 게재하여 온 누리에 알렸다. 그럼 [임정]이 온 누리에 자랑스럽게 선포한 [건국강령]의 사상적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 [임정]의 중요한 외무부장직을 맡고 있던 조소앙선생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 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이 명명한 바 “수미균평위하면 흥방보태평(首尾均平位하면 興邦保泰平)”하리라 하였다. 이는 사회 각층 각급이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면 태평을 보유하리라 함이니,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하자는 우리 민족이 지킬 바 최고 공리임.”이라 하였다. 소앙선생의 또 다른 기록인 “건국절단군소사연고(建國節檀君小史演稿)”가 있는 데 그곳에는 “더구나 비사의 기록처럼, ‘...70국이 항복하여 조공해 올것이요, 그 지덕을 힘입어서 신을 두호할 것이며, 수미를 정미하게 하여 그 평위를 고르게 하면 나라가 흥성하고 태을 보존하리라...’ 한 것은, 가장 오래된 사관인 神誌公, 즉 단군시대의 사람이 기록한 바라고 하였고, 숙종(고려 제 15대 임금, 1095-1105)의 시에는, 동해의 성인이 지었으니, 일찍이 효임금 [방훈]과 견줄만하다 들었네, 산마루에 옛 무덤이 있으니, 상서로운 구름이 단목을 휘감아 품었네”하였다. 이상으로 소앙선생은 신비지사를 균평의 근본원리를 밝힌 전거로 하였으며, 여기에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건국이념을 연결시켜 새 나라를 세우는 데 중심개념으로 하려 하였음을 알수있다. (참고문헌: “홍선희, 조소앙의 삼균주의 연구, 서울 1976, 한길사”에서 재인용) 3. 삼균주의(三均主義) 다음은 [건국강령]의 바탕이 된 [삼균주의]에 대해 알아보자. 2. 1. 사상적 배경 [삼균주의]의 기본은 천부경에 근거했으며, 그 중에서도 핵심은 절대균등사상이다. 그러나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은 [삼균주의]를 한족(漢族) 강유의(康有爲)의 대동사상(大同思想)에서, 혹은 손문(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에서, 혹은 무정부주의나 사회주의 등등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그런 관계로 이러한 학자들은 [삼균주의]가 손문의 ‘삼민주의’와 근본적으로 틀리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예로서 두 사상에서‘삼민주의’는 漢族을 만주족(淸族)으로부터 해방시켜 漢族 중화사상에 기초한 중국을 세운다는 대국주의 입장에 서 있는데 비해 [삼균주의]는 일제를 우리 조국에서 몰아내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운 뒤 세계 강대국과 약소민족들의 절대평등관계를 만들어 세계일가를 이루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는 점이 크게 다른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학자들이 [삼균주의]는 사회주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라 하는 데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홍익사상] 속에 융해되어 있는 사회주의적 내용을 당시 정세에 맞게 정리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나라의 독립과 겨레의 해방을 염원하며 낯 설은 이국 땅에서 투쟁하던 [임정]요인들이 앞에서 나열한 사상들을 참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에 있어서는 우리 정신문화속에 연연히 이어져 온 잠재의식으로서의 백두산 겨레의 [천부경]에 입각한 것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천부경]의 “본심본 태양앙명 인중천지일(本心本 太陽昻明 人中天地一)”이란 구절은 평등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상대적 평등이 아니라 절대평등을 말하고 있다. 하여 [천부경] 원리에 바탕을 둔 [삼균주의]는 절대평등론으로서 민족민중혁명으로 나라를 되 찾은 후 국내에서 평등뿐 아니라 나아가 “홍익인간 세계이화”라는 정신에 따라 세계를 혁명화하여 완전 평등한 [세계일가]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단계에 가서야 비로서 절대자유 절대평등의 세계, 즉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이룩된다는 것이다. 이는 “천부경”에 바탕을 둔 세계혁명이론이며, 특히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이라는 가르침에 따른 것으로서 현대적 표현으로 [영구혁명론]이라 하여 손색이 없다고 하겠다. 그 밖에도 [삼균주의]가 돋보이는 점은 원칙적으로 평등주의를 주장하면서도 [균등]의 내용에 있어서 분석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점이다. 그 하나는 사회철학적 측면에서의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관계적 측면에서의 개인과 개인간의 균등(人與人均等), 민족과 민족간의 균등(族與族均等), 국가와 국가간의 균등(國與國均等)이다. 이러한 두 차원의 평등을 실현시켜 [世界一家]의 이상사회를 이룩하려 한 것이 [삼균주의]의 기본특징인 것이다. (참고문헌: 조소앙의 삼균주의 연구, 쪽 48-55) 이처럼 [임정]이 내세운 [삼균주의]는 [천부경] 구절인 “석삼극 무진본 (析三極 無盡本)”에 의한 정세파악으로서 현대 철학적 표현을 빌린다면 명제와 반명제간의 모순과 그것의 지양, 조화 속에서의 새로운 모순의 생성 등을 설파한 변증법적 모순론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삼균주의]는 식민지로 전락된 우리 나라 현실의 내재적 모순성을 인정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모순관계를 변증법적인 발전으로 승화시켜 이를 혁명적인 방법으로 지양하여 이념을 현실화하려 했다는 점에 있어서 오늘날에도 그 현실성이 있다고 하겠다. 2. 2. 객관적 배경 상해 [임정]이 [삼균주의]를 내 오게 된 객관적 배경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적어 본다. 2.2.1 내적 요구로서 조화와 단결 당시 [임정]요인들이 풀어야 했던 핵심적 문제들은 이조말 독립협회의 민권운동을 핵심으로 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전래된 사회주의의 영향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가 큰 문제였다. 때문에 [삼균주의]를 창안하면서 조소앙선생이 고민한 것 또한 두 사상에서 영향을 받고 전개되는 분산된 항일투쟁을 하나로 묶어 더 큰 힘과 효과를 얻자는 생각 속에서 무엇보다 “민족”과 “계급”에 관한 것이었다. 즉 항일독립운동의 주체로서 온 겨레를 전제로 하는 민족주의 노선과 무산계급을 항일독립운동의 주체로 믿는 사회주의 노선간의 조화와 통일단결을 이루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민족”과 “계급”에 관한 문제만 하더라도 남이 쓰는 개념을 그대로 우리 항일독립투쟁에 응용하려고 하다보니 우리의 특수한 사정, 즉 이국 땅에서 항일운동을 한다는 것, 때문에 민족과 계급이 공통으로 외적의 탄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하여금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데서 깨달은 결과라 하겠다. 예로서 맑스는 산업화 되어가는 식민국가경영의 경제(세계경제구조) 틀 안에서 자기나라 노동자 계급(글쓴이: 맑스도 식민지민족의 처참한 현실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여 그 역시 서구중심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 날 수 없었고 따라서 식민지 백성들의 2중적 모순관계-민족과 계급-를 심장으로 느낄 수 없었다.)의 소외를 문제로 보았다면,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와 겨레의 삶과 미래를 걱정한 [임정]요인들로서는 제국주의 침략에서 희생당한 집단으로서의 민족소외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임정]요인들의 고민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항일민족혁명의 방략으로서 지도자 중심의 대중투쟁이냐 아니면 조직중심의 전 민족 대단결의 연합전선을 취하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다. 이 문제는 오늘날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한다고 하는 단체들 사이에서도 깊이 생각해 볼 점이 라 하겠다. 2.2.2 민족혁명과 세계 약소민족혁명은 하나란 인식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나라를 세운다는 것을 다만 나라를 되찾는 것이 아니라 민족민중혁명이라고 파악했다. 먼저 민족민중혁명이 완성되면, 다음은 세계 백성들의 혁명을 이루어 평화로운 지구촌 한 가정, 즉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는 약소민족으로서 남의 땅에서 모든 어려움을 이겨가며 피눈물 나는 독립투쟁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마음에 와 닫는 생동한 경험일 수 있다. 이점은 요즘 많이 논의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세계화 물결에 따라 ‘세계시민’을 이야기 하며 민족주의를 폄하하는 지식인들에게 [홍익사상]에 뿌리를 둔 우리의 민족주의가 안고있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깊이있게 연구 성찰하라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2. 3. [삼균주의]의 현실적 의미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삼균주의]는 우리 근·현대의 사상사적 맥락에서 볼 때 제국주의시대에 출현한 약소민족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다. 이는 국∙공전쟁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던 漢族의 땅에서 어려운 독립운동의 쓰라린 체험을 통하여 오랫동안 보충하고 수정하며, 실천 속에서 완성단계에 이른 것이기 때문이라 하겠다. 때문에 [삼균주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끊임없이 생멸해온 정치사상 중에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역사적인 것의 하나라고 자랑할 수 있다. [삼균주의]는 그 이론적 기초나 역사적 배경도 합리적이고 구체적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 그리고 정치적 요구를 집약적으로 표현해 준 점이 주목할 점이다. 하여 간고한 항일투쟁기간을 통해 생성된 [삼균주의]는 그 근본에 있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철학인 [주체사상]과 같은 부모인 [홍익사상]아래서 자란 형제사상인 것이다. 즉 민족자주와 민족주체성을 바탕으로 하는 [홍익사상]의 두 자식이며, 두 흐름인 것이다. 전자는 지식인을 중심으로 이론에, 후자는 젊은 평민들을 중심으로 실천에 더 비중을 두고 형성되어 왔음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이 두 사상은 우리 민족사에서 건전한 “우”와 “좌”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특히 6·15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민족문제와 사회평등문제, 정의로운 국제관계를 주체적으로 풀어가는데 현실적 가르침을 주는 사상이며, 앞으로 전개될 우리 민족사의 진로를 세계일가(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경지까지 이끌어 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기에 [삼균주의]의 현실적 의미가 있다 하겠다. 4. [한독당(韓獨黨)]의 당의(黨意) 이제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정치노선을 가늠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임정]의 여당이었으며, 행동주체였던 [한국독립당]의 정치노선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독립당]은 그 당책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지지한다고 밝혔고, 사실상 [한국독립당]은 그 결성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초 정당으로서 활동하였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臨政)의 국무위원이나 의정원(議政院) 의원들은 거의 [한국독립당] 간부들이었으며 따라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은 혼연일체가 되어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이러한 [한국독립당]의 당의를 훑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독당(韓獨黨)]은 당의 임무를 „우리는 오천년 자주독립하여 오던 국가를 이족(異族) 일본에게 빼앗기고 지금 정치의 유린과 경제의 파멸과 문화의 말살 아래서 사멸에 직면하여 민족적으로 자존을 얻기 불능하고 세계적으로 공영을 도모하기 미유(未由)한지라, 이에 본당은 혁명적 수단으로써 원수 일본의 모든 침탈 세력을 박멸하여 국토와 주권을 완전 광복하고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신 민주국(新民主國)을 건설하여, 안으로는 국민 각개의 균등 생활을 확보하며 밖으로는 인여인(人與人), 족여족(族與族), 국여국(國與國)의 평등을 실현하고 나아가 세계 일가(世界一家)의 진로를 향함.“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역사적 임무를 아래와 같이 4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나라를 찾는(光復)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활동할 바를 7대 당책에 규정하였는바 1. 당의. 당강을 일반 민중에게 적극 선전하여 민족의 혁명 의식을 환기할 것. 2. 국내외의 민족 혁명 역량을 집중하고 광복 운동의 총동원을 실시할 것. 3. 장교와 무장대오를 통일 훈련시켜 적극적으로 광복군을 편성할 것. 4. 적 일본의 모든 침략세력을 박멸함에 있어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즉 대중적 반항, 무장적 투쟁, 국제적 선전 등의 독립 운동을 확대 강화하고 전면적 혈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 5. 한국 독립운동을 동정하거나 원조하는 국가 및 민족과 절실히 연락하여 우리의 광복 역량을 충실히 한다. 6.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옹호 지지한다. 7. 항일 전쟁 중에 있는 중화민국과 절실하게 연락하여 항일 동맹군으로서의 구체적 행동을 취한다. 두 번째 단계는 건국(建國)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혁명적 이론에 근거하여 또 한국 사회의 특수한 조건과 객관적 정세에 의거한 7대 당강령(黨綱領)이 제시된다. 이 강령에 따라 삼균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나라를 세우고, 민주정치를 실시하여 모든 민중의 균등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목표로 된다. 이 7대 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토와 주권을 완전 광복하여 [대한민국]을 건립한다. 2. 우리 민족 생존의 기본 조건인 국토(國土) 국권(國權) 국리(國利)를 보위하며 고유의 역사문화를 발양시킨다. 3. 보통 선거제를 실시하여 국민의 참정권을 평등하게 하고 성별 교파 계급의 차별이 없이 헌법상의 국민의 기본권리를 균등화한다. 4. 토지와 대생산 기관을 몰수하여 국유로 하고 국민 생활권을 균등화한다. 5. 국민 생활상의 기본 지식과 필수 기능의 보급을 위해서 국비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국민 수학권(受學權)을 균등화한다. 6. 국방군의 편성을 위해 의무 병역제를 실시한다. 7. 평등 호조의 우의로서 우리 국가 민족을 대우하는 국가 민족과 더불어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공동 촉진한다. 세 번째 단계는 치국(治國)의 단계다. 이 단계에서는 삼균주의(三均主義) 이론에 따라 안으로는 국민의 지력 권력 부력, 즉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화를 실현하고 밖으로는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간에 평등을 시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네 번째 단계에서는 세계일가(世界一家)의 단계를 설정했다. 이 단계는 인류가 모두 함께 민족과 국가라는 틀을 뛰어넘어 세계일가(世界一家)라고 하는 최고이상에 도달하는 단계이다. 이는 바로 세계차원에서 [홍익사상]이 활짝 꽃피는 단계(글쓴이-세계민중혁명으로서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4단계 혁명 전략은 1942년 11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대한민국](大韓民國) 임시 강령에도 반영되어 있다. 또 [임정]은 1945년 8월 28일 중경(重慶)에서 제5차 임시 대회를 열어 5개조의 수정된 정책을 결의하고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새 나라 건설의 기본방침을 정하였을 때도 이 정치노선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한국독립당]은 1945년 11월에 [임시정부] 처럼 조직으로가 아니라 각계격파된 개인자격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단결된 작은 조직보다 많은 개인이 덜 위험하다는 이론에 입각한 미군정과 친일잔재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귀국한 [한독당] 개인들은 국민의회(國民議會)와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 등을 중심으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활동해 보았으나 결국은 남한만의 „단정“이냐 „반대“냐를 놓고 의견이 갈리어 미제의 음흉한 계획대로 민족진영은 분산되었다. 그리하여 미군정과 미군정의 비호를 받는 친일잔존세력들이 민족자주를 추구하는 애국애족세력을 살해하는 살벌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친일파들이 이름을 도용한 [대한민국]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저지하기가 힘겨웠던 것이었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사의 제 문제 II)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실들은 아직도 남북으로 갈리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좋은 예로서 백범 김구선생께서 조국에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해 남북회담에 참석하시는 동안 북에 진주했던 소련군은 김구선생의 ‘호령’(영상자료 “김구는 왜 북으로 갔나?” 참고할 것)을 그대로 받아드린반면, 남을 점령한 미군의 하지(J. Hodge)는 자주적 통일정부를 세우기 위한 백범과 그의 동지들의 노고를 코웃음 치며 미친사람이라고 비웃은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임정]의 정치사상과 정책방향, 그리고 그 행동주체였던 한독당에 관해 간략하게 알아 봤다. “건국강령”에서도, “삼균주의”에서도, “한독당 강의”에서도 그 골자는 민족자주였다. 이 점이 점령군으로서의 미군정과 죽기를 면하기 위해 외세에 빌붙어 발악해야 하는 친일잔재들로 하여금 [임정]을 단결된 단체로 조직적 귀국이 아니라 각계격파된 개인자격으로 귀국을 하게 한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럼 이제 ‘대선과 개헌정국’을 맞이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5.1. [대한민국] 현실 [임정]후기 정치로선을 체계화하는데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은 소앙선생이었다. 그는 우리 겨레가 일제 식민지 민족으로 전락되어 고통을 받게 된 이유로 구한말 부패한 집권층의 무능력, 일제의 침략만행, 우리 땅에서 일어난 청∙일 그리고 이어서 러∙일전쟁의 참화, 지식인들의 민족적 반성의 모자람 등을 꼽았다. 이러한 사회모순을 청산하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선생께서는 민족혁명의 당위성을 아래와 같이 밝히셨다. “무릇 어느 민족의 혁명대상이든, 한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거나 표현되는 것이 아니요, 또한 외래사상에 격동되고 나서 잇대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역사적인 병폐의 뿌리가 내부에 뒤섞여 매듭져 있고, 게다가 외래적인 특수조건이 물구비치듯 섞여 들어와 변하여 거대하고도 흉악스런 거물이 되면 비로소 혁명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국부적인 관계가 아니므로 국부적으로 풀려질 만한 것도 아니다. 또한 한 계급의 이해가 결코 아니라 각종 계급에 공통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혁명대상은 한국민족 전체의 분투와 노력이 없이는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족혁명을 통해 세워질 나라는 “한반도는 韓王韓帝의 통치권에 속하는 韓男韓女의 공유산이요, 한민족은 ‘능히 자국을 옹호하며 만방을 화협하여 세계에 공진할 天民이다. 일부의 권리라도 이족에 양도할 것이 없고, 일척의 땅이라도 이족이 점할 권리가 없으며, 일개의 인민이라도 이족이 간섭할 조건이 없으며, 우리 한국은 완전한 한인의 한국이라’고 주장하였다.” (출처: 한국독립운동사, 제3권 쪽 562; 홍선의, 조소앙의 삼균주의 연구, 한길사, 서울 4309(1976)년, 쪽 117 재인용) 그럼 상해 [임정]의 이름을 도용해 세워진 [대한민국], [임정]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자찬하는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은 어떤가? 첫째 미제의 식민지 처지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미국 대사가 사사건건 정치를 이래라 저래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한미 FTA협상문제도 그렇고, 평택미군기지 이전문제도 그렇고, 남북협력사업도 미국의 눈치보며 약속이 지켜지니 말이다. 두째 아직도 일본 우익깡패들을 상전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이란 사람들은 미국을 가는 도중 일본에 들리면 옛날 자기들을 가르쳤던 일본인 선생들을 찾아 만난다. 그리고 제자로서 존경심을 과시하고 식민지교육을 받았음을 고맙게 치사했다. 그러니 오늘날 일본 아베정권이 군사대국화정책을 밀고나가도, 또 재일 동포가 일본 우익정부로부터 민족적 권리는 물론 일반보편적 인권까지 유린당하며 탄압을 받아도 말 한마디 않는 정부가 오늘의 [대한민국]정부다. [대한민국]정부는 누굴위해 있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권중희선생께서는 오늘의 대선분위기에 휩싸인 [대한민국] 현실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다. “각급선거 때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망령이 되살아나 진실로 나라 위해 투표하는 경축분위기의 선거판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숭미반역도당들이 마음 놓고 나라망치기 경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 주는 망국의 굿판이 되게 하고 있으니 이젠 정말 너무도 역겹다 못해 당장 때려 엎어버리고만 싶다. 이는 결코 나만의 분노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악과 불의에 중독 돼버려, 올바른 가치관이나 의식이 마비돼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똑같을 것이니 말이다.” (……) ”이럴 바에야 차라리 물리적 힘을 지닌 군이 총칼 들고 나와 모두 휘저어 버렸으면 한다. 단 표독한 친일파 출신의 박정희 같은 단순권력탈취행태나, 또 무차별 학살로 약탈한 정권을 악용해 단군 이래 최대의 날강도가 된 전ㆍ노 일당 같은 그런 우격다짐 아닌, 진짜 국가민족을 위한 혁명다운 혁명을 해서 선비가 고민하지 않는 사회가 되도록 했으면 한다. (권중희, 민족정기구현회 자유계시판, 제발 혁명이 일어났으면, 4340년 6월 30일에서 퍼 옴) 앞에서도 밝힌 바처럼 우리 선열들은 일본식민지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로 온 겨레가 화목하고 평등하게 살기를 염원해 항일독립운동을 견결하게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도 나라 꼴이 권중희선생께서 지적하셨듯이 “망국의 굿판”이라면 이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애국선열들은 통일된 나라도 못 세우고, 왜 오늘의 우리동포는 일본 우익들로부터 탄압을 받는가? 가장 큰 원인은 외세의 개입이지만, 우리 민족진영 내부 또한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제 지난 60년을 민족적 양심비춰 자성하는 의미로 그 약한 고리를 냉정하게 간추려 말한다면 첫째 우리 민족자주세력이 자기 기둥 얼(홍익사상)을 우습게 여겼던 관계로 내부 결속이 부족했던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민족주체세력이 외부세력의 개입과 그들의 앞잡이들에 대해 너무나 인간적(?)인(글쓴이: 이런 점은 모든 사회 현상과 사물을 적극적이고 낙천적으로 보는 우리 백두산 겨레의 너무나 아름다운 본성이다. 다만 적들은 우리의 이러한 아름다운 본성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의 경각심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환상을 갖고 있었던 데에 있었다고 하겠다. 요즘 민족반역당인 한나라당도 함께 보듬어 안고 가야한다든가, 동포의 아픔을 외면하는 민단도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지론이 이러한 우리 정서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지 자못 우려된다. 이점 심각하고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5.2. 시대적 과제 얼마 전 인터넷신문에서 동국대 명예교수이신 주종환선생의 “우리 사회 주요모순은 분단 극복 민족주의 되살림이 시대의 요청”이란 글을 만나게 되었다. 주종환 교수가 지적했듯이 오늘날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한민국]에서 사대주의 극복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한마디로 정치, 경제, 교육 등 전 사회분야에서 사대주의 암이 만연한 사회다. 보기를 든다면 [대한민국]의 ‘우’라고 자칭하는 한나라당과 뉴라이트같은 협잡사기집단은 자본의 세계화에 춤추는 부평초인가 하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게 [대한민국]의 ‘좌’를 자부하는 ‘진보’의 사람들 사이에도 역시 선진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태어난 20세기 맑스레닌주의(당시 식민지 백성들의 처지를 계급이론에 의해 파악함으로써 민족적 모순관계를 간과한 부족점이 있음)를 교조적으로 받아 들고 팔러다니는 이른바 ‘서양선진사상’의 외판원이 있다고 하겠다. 옷은 번드르하고 보기 좋으나 “우리” 몸에는 맞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인 것과 같은 것이다. 또 최장집 교수는 “민족주의는 원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발생하고 발전해 왔으므로, 자유와 민주의 가치들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 또한 우리 조상들이 물려 준 “홍익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그 안에 이미 다 보장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세계 인류 최초로 “인권선언”을 천명하고 나라를 세운 백두산 겨레는 선천적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겨레이며, 민주적 가치를 따라 정치를 해 온 겨레다. 겨레의 잠재의식 속에 각인되어 면면히 이어오는 고루살이(화백), 두레 등 여러 전통가치에서도 알 수 있는 일들이다. 때문에 올바른 민족주의의 길을 되찾아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가는 일이 오늘의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다. 우리가 되찾고자 하는 민족주의는 바로 온 누리 만백성에게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이화세계]에 이르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민족주의인 것이다. 때문에 이름하여 [홍익민족주의]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온 누리 백성들을 평화로운 세계에서 평등하게 사는 길로 안내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하기에 최장집 교수가 걱정하는 일과 또 주종환교수께서 우려하는 점뿐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소외되는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비정규직” 생활권 문제도 이 [홍익민족주의]로는 우리 역사에 맞게 현실적이며 건설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민족주의”가 화두로 떠 오른 이때 “진보대연합 어떻게 볼 것인가?” 또 “중도대통합”이란 소식을 듣고 몇자 덧붙인다. 힘을 하나로 모으려는 노력이라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상해 [임정]당시 김구선생을 주석으로 모시고 일하던 [임정]요인들의 고민을 생각하면 우려되는 점 또한 없지 않다. 그때도 “유일당 운동”이다 뭐다 하며 ‘좌’니 ‘우’니 하고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힘을 하나로 묶어 내지 못해 고민했던 흔적들을 많은 글에서 만나게 된다. 그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그런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은 무슨 의미와 성격을 담고 있는가? ‘진보대연합’, ‘좌우갈등’ 혹은 ‘좌우합작’ 또는 “중도대통합” 등 화려한 이야기들을 피상적으로 보면 [임정] 당시나 지금이나 같다고 하겠으나 좀 더 깊이있게 분석해 보면 본질적인 면에서 천지 차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남의 땅에서 항일독립투쟁을 하던 상해[임정]때도 ‘좌우합작’이 요구되었고 또 핵심문제였다. 자주권이 있는 듯 하면서도 없는 오늘날은 더욱 ‘좌우합작’이나 “진보대연합”혹은 “중도대통합”과 같은 힘을 하나로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름은 ‘좌우합작’ 혹은 “진보대연합”또는“중도대통합”이지만 상해[임정]시기 ‘좌우합작’과 오늘날 [대한민국]에서의 ‘좌우합작’은 그 본질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상해 [임정]당시 ‘좌우합작’은 “우리”, 즉 민족자주를 기본으로 한 바탕에서 노력을 하였는 데 비해 오늘의 ‘좌우합작’이란 모두 외세가 만들어 논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대한민국] 안에서 ‘좌우합작’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 자주 사상 안에 뿌리가 내려 있는 ‘좌’와 ‘우’가 아니라 외세의 흙탕물에 덩덩 떠다니는 부평초인 ‘좌’와 ‘우’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계가 순박한 국민을 우롱하는 사기행각인 것이다. 정신적∙사상적 뿌리가 같은 ‘좌’와 ‘우’의 합작이 요구되는 시기다. 이제 “우리” 몸에도 맞고, 입고 나가 다른 사람들 앞에 서도 손가락질 받지 않고 수준높은 몸차림이라는 평을 받으려면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홍익사상]을 바탕으로 ‘좌’와 ‘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뿌리를 같이한 ‘좌’와 ‘우’는 서로 도우며 상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럴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 “뿌리”를 같이한 건전한 “좌”와 “우”가 있어야 함은 사람마다 왼손 오른 손이 있고, 왼발 오른 발이 있듯이 머리의 뇌수도 냉정한 사고를 지도하는 왼쪽이 있고, 따듯한 사랑과 정을 나눌 줄 아는 오른 쪽이 있어서 서로 보완하고 작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니다. 하여 [홍익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에서 태어난 [삼균주의]의 21세기 형으로서 [홍익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켜 온 [주체사상]의 21세기 형인 [선군사상]도 같은 뿌리인 [홍익사상]에서 태어난 민족자주사상이다. 우리 민족민중진영이 이 두 사상을 ‘우’와 ‘좌’의 나침판으로 삼고 현명하게 단결하여 서로 도운 다면 빠른 미래에 주체적으로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중의 독립국가를 이루고, 나아가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실현하여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백두산 겨레는 장마당 소인배들의 속 좁은 속임수의 정치가 아니라 대륙을 넘나들던 조상들의 기상을 따라 확 열린 마음으로 [홍익민족주의]를 구체화하여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민족자주세력이 단결하여 우리 기둥얼 [홍익사상]에 맞게 진정한 ‘우익’인 [홍익민족자주당](가칭)을 묶어 가짜 ‘우익’을 청산하고, 6∙15시대, 21세기를 이끌며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앞당겨 민족자주를 실현해 가는 데서 통이 큰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힘으로 세계일가 실현의 길을 열어 [홍익사상]의 꽃이 온 누리에 만발하게 하는데 솔선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백두산 겨레앞에 주어지는 “통일에서 세계로”, 즉 민족민중혁명에서 세계혁명으로라는 인류사적 과제가되는 것이라 하겠다. 6. 맺는 말 [임정]의 문지기래도 하시겠다며 겸손하고 순수한 민중적 애국심으로, 또 ‘통일이 없으면 독립이 없다’는 민족자주신념으로 일생을 투쟁하신 백범 김구선생께서 남기신 말씀을 떠 올리며 우리 민족민중진영은 오직 우리 기둥 얼인 [홍익사상]을 받들고 [홍익민족주의]를 발전시키며 모두 이 길을 함께 가자는 뜻에서 이 글을 맺는다. “눈이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때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남긴 발자욱은 훗날 드디어 뒷 사람의 길이 될지니 ……” 4340(2007)년 7월 2일 원효탄 ★★★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한 민족정기구현회 홈페이지소개: www.koreakjh.com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기대합니다. ★★★ 겨레의 기둥 얼을 되세우는 데 권하고 싶은 책 소개: 1. 권태훈옹저: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문화, 정신세계사, 서울, 4322(1989)년 2. 안창범: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 제 정신차리기 시민운동준비모임, 개천 5894년(1997) 3. 박기문: 맥이, 정신세계사, 서울, 4325(1992)년 4. 고준환: 하나되는 한국사, 범우사, 서울, 4325(1992)년 5. 강만길: 조소앙, 한길사, 서울 4315(1982)년 6. 홍선희: 조소앙의 삼균주의연구, 한길사, 서울 4315(1982)년 7.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1-7권), 조선로동당출판사, 평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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