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로케이션:::서로 길목이 되어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이유가 저들-극우수구세력들-의 아이돌이어서일까요? 아니요. 그만큼 쥐고 흔들기 만만한 상대기 때문입니다. 비리도 많고, 욕심도 많고, 정치는 잘 모르는데 나대기는 좋아하고, 무식해서 시키면 앞뒤 안 가리는 돌격대원 스타일이라서 간택된 겁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간택될 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정경유착이 얽혀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드라마 프로덕션의 대표도 그 줄에 서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까, 아님 불이익이라도 당하지 않으려고 띠 두르고 선거운동에 나설 정도였습니다. 쥐새끼가 왜 죽어라 민영화를 외치겠습니까? 다 정경유착의 이해관계, 조중동의 요청에 충실하려면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21세기 사회주의: 신좌파운동의 재평가와 새로운 비판 패러다임

서영표 / 영국 Essex대학교. 사회운동 전공

1. 문제 제기

우리는 두 가지 비관적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첫 째로, 시장 논리를 앞세운 막강한 정치, 경제, 군사력 앞에서 희생되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목격하고 있다. 자본은 힘은 너무도 강력하고, 그리고 시장은 지금까지 인간이 발명한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만족시키는 가장 완벽한 경제, 사회체제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비관적 상황을 더욱 비관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초래한 파국적 상황을 목격하고 경험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비판적’담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자본주의적 체제가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일상생활에까지 파고 들어온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더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과 좌절의 상황으로 몰아 넣는 체제가 결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믿게 하는 힘이 바로 근대적 자본주의 체제의 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노동을 봉건적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측면을 웅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는 비자본주의적 관계의 배후지를 자본관계와 접합시키고 지배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자본주의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가사노동이 그 대표적 예이지만 전세계에 산재한 지역적, 사회적, 가족적 네트워크들은 완전하게 자본주의화 될 수 없다. 최근 자본은 구조조정에 따른 고통의 전가를 위해 이러한 비자본주의적 사회관계들을 ‘사회적 자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지만, 이러한 새로운 지배 전략조차도 비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에 배태된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제거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자본주의의 태동과 궤를 같이 하는 근대적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형식적인 평등을 보장하고 최소한의 정치 참여를 허용했다. 이것은 항상적인 정치적 갈등을 필연적으로 초래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항상적인 갈등이 오히려 근대적 민주주의 체제가 자본주의와 결부됨으로써 발생하는 근본적 문제를 표층의 갈등으로 해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경제적 제도 내의 갈등이 근본적인 모순에까지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표층의 ‘게임’으로 한정지을 수 있는 것이 근대적 민주주의체제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바로 이면이 시장과 자유민주주의의 제도는 그 자체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그렇게 보여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체제의 불안정성이 오히려 체제의 ‘역동적’ 안정성으로의 귀결은 서두에서 언급한 비관적 현실인식을 벗어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필자의 주장은 이러한 역동성은 ‘비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시장안으로부터, 그리고 다양한 비시장적 관계들로부터 포위 공략될 수 있으며 (in and against the market); 국가제도 또한 내부적 균열점들과 외부적 사회운동의 힘에 의해 동시 공략될 수 있다 (in and against the state). 이러한 모든 투쟁은 시민 또는 민중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을 통해서 강화되고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empowering the people). 마지막으로 제도적 투쟁과 비제도적 투쟁의 결합은 근대사회가 창출한 다양한 보편적 이데올로기 (민주주의, 인권, 정의 등등)에 대한 호소 또는 그것들을 통한 제도 내에서의 내재적 비판(immanent critique)과 분리될 수 없음이 중요하다. 보편적 이데올로기는 피지배계급들의 역사적 투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지만, 완전히 제도화 될 수 없는 일정정도 비어 있는 기표들(empty signifiers)이다. 내재적 비판을 통해, 즉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통해 저항적 사회세력들은 비어있는 기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의미부여 조차 현존하는 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쟁점화하는 내재적 비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글의 주된 관심은 내재적 비판이 담화적 실천 또는 언어게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비판을 통해 확보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도적 실천과 어떻게 결부시키는가에 있다. 규범적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이데올로기 투쟁은 탈현대적 상대주의로 귀결될 위험이 높고, 사실적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규범적 기준의 고집은 관념론적 근본주의(foundationalism)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규범적 기초로서의 개인적 자율성 (individual autonomy)로부터 출발하는 자유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정의, 또는 평등의 규범적 기초를 제시하는 것은 자유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못한다 (Norman Geras 또는 Steven Lukes의 경우). 도덕적 원리 또는 윤리적 규범을 역사적으로 제한된 정치적 공동체 내에서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공동체주의자들(communitarians)의 주장이 일면 타당한 것이다. 문제는 공동체 주의자들은 공동체 내에 갈등과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인데, 포스트맑스주의자들 (특히 Chantal Mouffe)의 입장은 담화적 구성체 내의 갈등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포스트맑스주의는 근본주의 또는 보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구성된 사회 내에서의 옳고 그름을 가를 수 있는 규범적 기준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그 규범적 기준이 지속적으로 논쟁에 개방되고 재구성되기 위한 실재적/사실적 기준을 찾으려는 과학적 노력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히 많은 모순과 갈등에 직면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고립된 개인으로서 그것들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계급(social classes) 또는 사회세력(social forces)의 구성원으로서 그렇게 한다. 사회적으로 불리한 사회계급 또는 사회세력은 현존하는 질서에 대해 도전적이고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들의 현실 인식이 파편적이라는 것에 있다. 일상에서 얻어진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은 문제를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총체적 분석까지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구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자신들의 직면한 당장의 문제가 더 큰 사회적 모순가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분석이라고 부를 수 도 있을 것이다.

과학적 분석은 완벽하게 사회구조를 설명하고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 착취, 빈곤, 차별, 불평등 같은 사회적 모순이 현존하는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드러나고 있는 양상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동시에 다양한 비판적 시각들이 접근방법이나 초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사회구조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 과학적 분석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이것을 넘어가는 ‘과학적’ 지식은 교조, 독단, 권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적 지식이 합리적이라면 그것은 과학이 증거, 일관성, 적합성 등의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서로 토론함으로써 발전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적 정치이론에 관해서 말하자면, 과학은 각각의 행위자들(물론 사회계급 또는 사회세력에 일원으로서)이 실천에서 채득한 실천적 지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즉 여성운동, 지역운동, 평화운동, 노동조합운동 등에서 축적된 실천적 지식이 없이는 과학적 분석은 생겨날 수 없다. 하지만 같은 과학적 분석이라고 해도 출발점이 같을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신고전파경제학을 비판하는 대안적 경제학은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출발할 수도 있지만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부장적 질서가 자본주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더 오랜 억압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고 생태계의 파괴가 자본주의 시대에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자들 모두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질서에 있다는 것이다. 서로 같은 대상을 비판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다른 면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공통의 대상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 대화와 토론 그리고 지식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정치적으로 말하면 이것이 바로 연대의 가능성인 것이다.

요약하자면, 지식구성은 실천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의 생산적 결합의 과정이며 (실천적 지식이 없는 과학적 지식은 공허하고, 과학적 지식이 없는 실천적 지식은 맹목이다!!); 이러한 실천적 지식이 구성되는 장은 제도 바깥뿐만 아니라 안일 수도 있으며; 제도 안팎의 동시 투쟁은 다양한 사회계급 또는 사회세력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운동간의 연대에 의해서 가능하다. 필자의 입장은 반자본주의적 투쟁은 최소한, 사회주의, 여성주의 그리고 생태주의적 시각을 동시에 포괄 할 수 있는, 그러나 동시에 이 각각의 시각이 큰 틀 안에서 생산적으로 토론할 있는 한계를 설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2. 새로운 사회주의 패러다임의 조건 1: 신자유주의와 그 한계, 그리고 저항

1970년대 이후 다시 득세하기 시작한 시장 자유주의는 소위 구조 조정 (structural adjustments)의 이름하에 사유화, 탈규제, 자유화를 가속화시켰고 그 결과는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그 파괴의 정도가 더욱 심각하였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신자유주의적 교조는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공공재로 인식되던 자연자원에까지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려 했다. 신자유주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존재 자체를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며 그 기준에 따라 상품가치를 가지지 못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 넣었다. 심지어 자유주의적 교조는 공동체적 사회적 연대망조차도 시장의 힘의 파괴적 효과를 중화시키는 완충지대로 이용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장의 힘은 자연과 문화와 자본주의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았던 지구상의 많은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풍경은 지배적인 자본주의화 경향에 반하는 다양한 운동을 배태시킬 수밖에 없다. 지배적 자본주의적 담론은 그것을 무시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성장이 넘어 설 수 없는 자연적 한계 (natural limits)가 존재한다. 그 한계를 무시한 무분별한 발전의 추구는 인간의 기술로는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반응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하겠다. 이러한 한계의 인식은 환경운동 또는 생태주의 운동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통상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게임의 패배자로 간주되는 많은 사람들(이론적으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보통 지구상 인구의 80%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고 말한다)은 단순히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빈곤으로 몰아넣는 지배적 논리와 사회구조를 문제 삼게 된다. 빈곤에 고통 받고 기본적인 필요 (fundamental needs)를 충족시키는데 필수적인 가장 기초적인 시설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저항과 투쟁의 결과는 자본주의적 지구화에 반대하는 다양한 풀뿌리 단체들과 국제적 연대망으로 드러나고 있다. 소위 기업하기 좋은 조건을 만든다는 명목 하에 다양한 범주의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조건으로 내 몰리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숫자의 노동자들이 파트타임. 임시고용, 계약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노동운동이 단순한 작업장의 이해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지역적 이슈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 들이게 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동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시장논리의 확대적용은 이전에 민족국가들에 의해 제공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안전망의 축소를 동반했다. 세계은행과 같은 자본의 국제적 대표체들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관습, 연줄망을 포괄하는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또는 비공식적 섹터 (informal sector)를 육성시킨다는 이름 하에 이러한 축소가 초래할 수밖에 없는 약자들의 고통을 그 약자들이 속한 공동체로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초래한 결과 중에 하나가 풀뿌리 지역에 기반한 다양한 여성운동 단체들로부터의 저항이었다. 사회적 자본에 입각한 사회정책이 빈곤을 초래한 구조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그 부담을 지역공동체에 전가시키려 할 때 여성이 책임져야 할 부담이 2배 3배로 늘어 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형태의 저항운동들(counter-movements)은 자본이 가진 엄청난 힘에 비해 왜소하다고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사상가들은 이러한 형태의 운동들이 보다 낳은 사회로 향해가는 인류의 거시적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지적해 왔다. 심지어 중도좌파 경향의 사상가들조차도 이러한 의미를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사회운동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을 지적한 모든 사회이론가들이 그것이 사회주의적 정치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이론적 합의(theoretical consensus)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3. 새로운 사회주의 패러다임의 조건2: 이론적 합의

사회이론의 선두주자로서 기든스가 강조하는 것은 급진적 현대성 (radical modernity)의 시대가 가져다 준 성찰성(reflexivity)이다. 그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지구화의 풍경을 유연성을 향한 되돌릴 수 없는 운동으로 묘사한다. 전지구적 무대에서, 기업은 생존을 위해 유연해져야만 하고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지구적 경쟁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만 한다. 사실 기든스가 묘사하는 현실은 매우 어둡게 보인다. 그러나 기든스의 논조는 매우 낙관적이다.

“자아 (the self)는 성찰적인 프로젝트이며, 점점 더 육체 또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개인은 단순히 물려받고, 상속되고 전통적인 지위 위에 세워진 하나의 정체성 (an identity)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개인의 정체성은 광범위한 범위에서 발견되고, 구성되며 적극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자아가 그렇듯이 육체(the body) 또한 더 이상 자아를 운반하는 물리적 틀(the physical baggage)로 인식되지 않는다. 곧 육체 또한 구성되며 적극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며 숙명적으로 받아들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Giddens, 1994: 82).

기든스에 의하면 지구적 자본주의의 동학은 개개인으로 하여금 자기결정(self-decisions)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지식과 자원에 접근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이러한 접근 가능성의 확대는 개개의 행위자들이 매우 높은 수준의 성찰성을 가지게 하며, 정치 또한 이러한 성찰성에 기반하게 된다. 기든스는 이를 생활정치(life-politics)라고 명명한다 (Giddens, 1994: 90-92). 한 발 더 나가 기든스는 성찰성이 대화민주주의(dialogic democracy)를 가능하게 하고 이는 또 다시 적극적 신뢰 (active trust)에 기반한 사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15-116). 그는 또한 ‘사회운동과 자조그룹(self-help groups)의 활성화’가 높아진 성찰성의 징표라고 지적한다 (120). 기든스의 정치적 프로젝트는 사회주의 정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위의 급진적 근대성이 가져다 준 성찰성의 묘사는 새로운 종류의 사회주의 정치를 가능하게 할 조건에 근접하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이버(Stephen Driver)와 마텔(Luke Martell)은 기든스를 신노동당의 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지식인중의 한 명으로 꼽으면서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현대사회의 개개 행위자는 시장력의 논리에 유연하게 스스로를 적응시켜야 한다고 전제한다는 것이다 (1998: 55-56). 이들의 정책노선은 단순히 ‘경제적 재분배와 권리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적 강조로부터 개개 시민과 지구적 시장사회에서의 그들의 책임을 중요성으로 강조점을 옮기는 것’이다 (176). 여기서 필자의 질문은 현대사회가 만들어 낸 개개 행위자의 높은 정도의 성찰적 능력의 힘에도 불구하고 그 성찰성을 제한하고 침식하는 시장을 통제하거나 사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중도좌파 정치이론의 역설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역설은 사회이론의 탈현대주의적 전환에 의해 영향 받았지만 시장의 논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한 벗어날 수 없어 보인다.

기든스나 비슷한 입장을 개진하고 있는 사회이론가들과는 달리, 필자는 높은 수준에 도달한 성찰성은 현대를 사는 우리로 하여금 시장과 관료주의적 국가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제안한다. 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형태의 고통과 필요가 존재하며, 이것들에 따라 무수히 많은 형태의 운동들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은 네트워크와 정치적 동맹, 공통 주제에 대한 토론, 정치적, 이론적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연결된다. 사회주의적 지식인의 임무는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급진적 경험으로부터 ‘대안적이고 실현가능한 사회생활의 형태를 찾아내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Benton and Craib 2001: 139).


4. 사례: 급진적 런던 광역 시의회(the Greater London Council)>

1981년에서 1986년가지 영국의 런던의 시의회는 소위 노동당 좌파에 의해 장악되었다. 당시 런던시의회는 다양한 사회주의적 실험을 시도하는데, 그 중심적 기조는 시민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시의회에 의해서 발간된 다양한 정책 문서에 정리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런던 사업전략』(The London Industrial Strategy)과 『런던 노동계획』(The London Labour Plan)이다.
당시 런던 광역시의회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정치적 관점으로부터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들은 주로 산업정책에 초점을 맞추었고 당시의 정책결정과정이나 결과만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런던 광역시의회의 소위 지방사회주의는 몇몇 정치인이나 활동가들이 급조한 가공물이 아니라 장기적인 역사적, 이론적 맥락을 가진다는 것이 이 글이 주장이다.

1) 역사적 배경: 신좌파, 신사회운동, 노동당 신좌파

런던 광역시의회의 사회주의 전략의 ‘역사적’ 배경은 세 개의 뚜렷이 구별되지만 서로 상호 연관된 영역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이론적 신좌파’ (the intellectual new left), 풀뿌리 신좌파 (the grassroots new left), 그리고 노동당 신좌파 (the Labour new left). 영국 신좌파 내의 이론적 논쟁은 주로 영국사회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강조하는 앤더슨/네언과 민중문화의 독자적 동학과 카운터 헤게모니를 강조하는 톰슨 사이에 전개되었다. 이것은 그람씨 이론이 가지는 두 가지 측면 (지배적 헤게모니의 관철과 저항적 헤게모니의 구성 가능성)에 대한 해석을 둘러싼 것이었다.
이같은 상반된 입장은 현장단위 노동자 운동 (shop-stewards’ movement), 여성 운동, 평화운동, 다양한 형태의 지역 공동체행동 (community actions)이 보여준 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과학적 분석이 결여된 다양한 사회운동은 대단히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엘리트주의적 입장과 사회운동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대중주의적(populist)입장이 대립되었다. 과학적 분석 또는 지식이 실천적 지식과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론적 좌파내의 논쟁과는 별개로 분출하고 있던 풀뿌리로부터의 새로운 사회운동의 힘은 노동당의 지구당의 역관계를 변화시켰다. 존 기포드(John Gyford)의 표현을 빌자면 새로운 도시좌파(New Urban Left)가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이 노동당의 지구당을 장악하고 있던 낡은 정치적 토호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기층의 변화는 노동당 전체의 좌파들을 고무시켰고 결국 당 노선 정체의 급진화를 결과했다. Tony Benn으로 대표되는 노동당좌파는 세처의 신우파와 마이클 풋(Michael Foot)와 닐 키녹(Niel Kinnock)으로 이어지는 노동당의 낡은 사회민주주의적 패러다임 사이에 새로운 길을 찾으려 했다 (키녹은 존 스미스와 토니 블레어로 이어지는 중도우파적 모더나이제이션을 시작한 장본인이다). 전국 정치에서 세처우파에게 밀리고 당내에서는 당우파에서 밀리던 정치적 지형에서 노동당좌파가 선택한 정치의 영역이 지방정치였으며, 런던, 쉐필드, 웨스트 미들랜즈 등의 지역 거점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실험을 실천에 옮기려 했다.

2) 이론적 배경: 새로운 사회운동의 이론적 수용

앞에서 언급된 역사적 운동들이 어떻게 이론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적 운동들은 사회 구조와 행위 사이의 관계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저항적 이데올로기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이론적 난제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그람씨에 대한 톰슨주의적 해석과 알튀세주의적 해석의 이론적 합의지점을 찾으려함 →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 또 국가기구와 같은 현존하는 제도적 장치가 급진적 정치학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실천적이고 발전적인 이론적 자원을 제공해 주었다 (밀리반드와 플란차스의 논쟁, 그리고 홀로웨이와 피치오토와 같은 사회주의 경제학자 그룹(the Conference for Socialist economists; CSE)의 논쟁).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은 전통적인 사회주의 정치학이 간과했던 새로운 주제들에 주목하게 했다. 생산과 계급의 문제를 넘어선 재생산 (reproduction)과 소비의 문제가 그것이다 (까스텔과 하비의 도시문제에 대한 논쟁).

3) 세처리즘: 신자유주의 시대, 시장주의적 유토피안

급진적 GLC라는 역사적 사건은 영국 경제의 쇠퇴와 그에 따른 전반적 사회적 위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떠나서 설명될 수 없다. 더욱더 중요한 점은 경제적 쇠퇴와 그것이 초래한 사회적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극복할 것인가를 놓고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파 사이의 이데올로기 투쟁의 한 가운데 급진적 GLC가 위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약하자면 급진적 GLC는 어떻게 영국사회를 재편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응집된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새처 정부가 비록 시장자유주의적 정책 노선을 보통 영국 국민들의 정서에 접합시킴으로써 일정한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완벽한 정치적 통합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새처주의 블록 내부에 조차 많은 이견들이 존재했으며 것은 다양한 저항의 지점들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저항의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지방 정부(local government)였으며, 급진적 GLC는 그것의 대표적 사례였다.
(필자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는 Pat Devine (2007)이 있다. 드바인의 주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게된 상황을 그람씨주의적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4) 저항, 대안적 실험, 그리고 실패-GLC 사례 (1981-86)

많은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GLC는 이 시기 런던의 정치에 참여했던 활동가들, 시의원 그리고 평범한 런던 시민들의 열정적인 지지에 기반해 일상생활의 실천적 지식과 장기적인 사회주의적 전략(계획)을 창조적으로 결합시키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한 결합은 새로운 기술발전에 주목하고 그것을 적극 활용하려는 노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이었다.

(1) 공적개입과 산업 재조정(Public Intervention and Industrial Restructuring)

① 공공 경제 (Public Economy)

GLC는 대중교통, 주택, 의료 등의 공적 영역에서 보통사람들의 필요(needs)를 충족시키는, 그리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 (socially useful production)을 정책수립과 집행의 기준으로 삼았다 (루카스 플랜의 예). 이러한 정책수립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필요를 시민들 스스로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래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는 것이다. 신우파가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대륙’에 작은 섬에 불과했던 런던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 스스로의 생각을 최소한의 기제를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회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과 지역개발과 관련해서 지역주민의 자발적 계획, 즉 민중계획(Popular Plan)을 지원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였다.

GLC는 보통사람들의 실천적 지식에 근거하지만 그 내부의 갈등적 측면을 극복하는 전반적 계획(an overall planning)이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통합적인 전략적 계획 (integrated strategic planning)이 없이는 국지적 요구와 저항은 좌초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② 사적 기업의 재구조조정

GLC는 거대한 국가기구로서의 구매력(purchasing power)을 통해 사적 경제영역에 개입하려 했다(7억 파운드 규모로 2만개의 기업과 계약). ‘원칙적으로’ GLC와 계약을 맺기 위해서 해당 기업은 인종적, 성적 차별금지, 건강과 안전, 장애인 고용 의무 등을 준수해야만 했다.
또한 GLC는 광역 런던 기업 위원회 (the Greater London Enterprise Board, GLEB)라는 일종의 투자은행을 설립하고 사적 대기업에 대해 개입 하려 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GLC가 개입했던 기업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중소기업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GLEB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극히 제하되어 있었다.

③참여 (Participation)

앞에서 지적했듯이 GLC는 실천적 지식을 정책 입안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했다. GLC에 직접 참여했던 힐러리 웨인라이트(Hilary Wainwright)의 주장처럼 이것은 새로운 차원의 지식의 정치(politics of knowledge)였다. 명목뿐인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즉 직접적인 민주적 참여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 그리고 자원이 제공되어야 했다. 독점되어 있는 지식과 정보의 재분배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이러한 매락에서 GLC는 각종 정보 네트워크 (테크놀로지 네트워크), 지역 정보센터 등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지역주민 스스로 도크랜드(Docklands) 개발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주었다.

④ 평등한 기회 (Equal Opportunities)

노동에 대한 협소한 노동자주의적 시각(a narrowly workerist view of labour)을 극복하기 위해서 육아와 가사노동에 대한 대안적 정책, 여성의 고용에 불이익을 줄일 수 있는 정책, 탁아 시설의 확대, 가사 서비스를 여성의 창업과 연결하거나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서비스 제공 등의 혁신적 사회정책을 도입하려 했다 .
가사노동의 불평등한 분업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된 이미지 비판했으며, 장기적으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가사/육아의 분담의 전망을 제시했다 (제도화된 인종주의, 이성애주의에 대한 비판도 중요한 정책적 과제였다).

(2) 사회적 필요에 기초한 생산과 서비스

①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과 시장의 현실
② 이윤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서비스 제공
③ 참여계획 (Popular Planning)-도크랜드(Docklands)의 사례


5. 대안적 시각

1) 사회주의적 유토피안?- 시장의 사회화

좌파 진영내의 다양한 입장으로부터 GLC에 대한 이론적 평가가 제출되었다. GLC에 대한 비판적 평가의 대부분은 포괄적인 사회주의 전략의 부재 (a socialist overall plan), 시장을 통제하지 못한 점(failure to control the market), 그리고 대중운동으로부터의 정치적 압력이 충분하지 못한 점(the limitation of political pressure from popular movements)을 지적한다. 당시 GLC의 급진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기구로서의 GLC와 자발적 운동 단체들(voluntary groups) 사이에 긴장이 있었음도 빼 놓을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다양한 한계들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새처 정부에 의한 대도시 시의회의 폐지에 따라, GLC 스스로 정치적 실천 속에서 그러한 한계들을 반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러한 현실적 제한은 5년 동안의 실천적 경험을 이론적 논의와 접합함으로써 새로운 종합적 사고를 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 급진적 GLC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고 그 다양한 입장 사이의 대화를 통해 얻어진 최소한의 합의가 다시 현실 정치에 투입될 수 있는 조건이 봉쇄되었다.

GLC 스스로가 가질 수 없었던 이론의 순간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 좌파의 이론적 논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GLC의 실천적 경험을 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개진된 참여민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의 사회화를 주장하는 몇몇 사회주의적 경제학자들의 논의가 중요하다.

노브 (Alec Nove)와 만델 (Ernest Mandel)의 논쟁--정보 유통의 수단으로서 시장의 불가피성과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탈집중화된 계획

엘슨 (Diane Elson)의 노브-엘슨 논쟁에 대한 평가 -- 시장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노브를 비판하는 만델 옹호. 하지만 만델의 입장은 과도하게 ‘필요’를 단순화시킬 수 있음. 시장의 사회화전략 제시.

드바인 (Pat Devine)의 시장교환(market exchange)과 시장력(market forces) 구분-- 민주적 사회주의 전략은 시장과 계획의 대립점에서 찾아질 수 없으며, 하이예크의 비판 (시장은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 표현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함. 즉 시장이 암묵적 지식을 표현해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며, 암묵적 지식은 민주적 참여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음을 주장. 다시 말하면 하이예크의 집중화된 계획경제의 문제에 대한 비판을 극복할 수 이었어야 함. 협상에 기반한 조정 (negotiated coordination)을 통한 양적, 질적 정보의 민주적 수렴이 전제되어야만 민주적 계획이 가능.

2) 자본주의적 질서를 비판하는 규범적, 사실적 준거점 (필요의 정치학)

필자의 경우 자본주의적 시장 사회에 대한 사실적, 도덕적 비판을 위해 필요 개념(the concept of needs)을 주목한다. 하지만 사실적, 도덕적 비판을 위한 준거점 그 자체가 초역사적으로 고정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규범적 기준조차도 사회적 투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규범적, 사실적 준거점의 역사적 상대성을 인정하는 것이 탈현대주의적 상대주의로의 투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점과 관련하여 필자는 비판적 실재론 (critical realism)과 여성주의 관점 이론 (feminist standpoint theories)으로부터 서로 다른 다양한 필요의 인식과 정의의 가능하고 이러한 다양한 인식과 정의가 합리적으로 토론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① 필요(needs)의 정치학, 그리고 구체적 유물론 (embodied materialism)

생산 양식에 대한 생태학적, 여성주의적 비판 -- 삶의 양식, 또는 생활양식 (mode of life). 생산과 더불어 재생산의 문제를 이론내적으로 받아 들여야 함
여성주의의 시각에서 기존의 맑스주의 패러다임은 생식과 돌봄(care)을 포괄하지 못했으며, 생태주의적 시각에서 기존의 유물론은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정복할 대상으로 간주 (Mary Mellor, Ted Benton, Peter Dickens, Kate Soper)

② 기본적 필요와 인간적 필요

동물과 인간의 연속성 (기본적 필요):
인간사회의 특수성 (인간적 필요의 역사적 발전(필요의 목록의 증가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의 변화), 문화적 다양성)

생물학적 필요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방식을 고려
필요의 개념은 현존하는 사회질서를 비판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함과 동시에 그것을 극복한 미래 사회를 기획할 수 있는 기준 또한 제시할 수 있다 (시장경제 비판과 대안적 경제체제 제시의 근거).

“인간이 아닌 동물과 공유하고 있는 필요의 개념 없이는 빈곤, 기아, 그리고 최악의 착취 같은 현상을 비판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 웰빙의 최저선(bottom line)에 대한 호소이다. 필요는 무엇이 인간적 필요인가를 토론할 수 있는 사실적 증거(factual evidence)를 제공한다: 설명적 준거점 (an explanatory reference point) [예를 들어 어린이나 노인들의 핀곤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기초적 영양섭취 요구량과 같은 사실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반면에 인간적 필요는 근본적 필요의 위반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규범적 준거점 (a normative reference point)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빈곤은 인간의 복지와 존엄성의 기준을 통해 쟁점화될 수 있다]. 비록 기본적 필요와 인간적 필요 모두 규범적이고 사실적 측면을 가지지만 (근본적 필요 또한 궁극적으로는 영구적인 개정에 개방된 개념일 뿐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인간적 필요라는 개념은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좀 더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false needs, wants or desire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의 과제→자본주의적 이윤동기가 창출하는 허위적 필요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 (unintended consequences로 보편적 필요의 확장을 결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허위적 필요에 의한 소비의 확장은 부정적 효과를 더 많이 갖는다. 끊임없는 소비(성장)가 가져올 생태적 효과뿐 아니라 인간의 육체적 건강과 문화적 공동체조차 파괴한다. 먹거리에 도사린 위험성, 차량증가에 따른 일상생활의 위험 증가, 의약품의 남용에 따른 건강악화와 신종 수퍼 박테리아의 출현 등등. )

3) 상대주의를 넘어선 차이의 인정, 그리고 소통과 연대

여성주의 관점이론 (feminist standpoint theories, or epistemologies)

“지식은 억압받는 이들이 억압자를 상대로 한 투쟁을 통해서 얻어진다. 여성의 경험이 지배적 계급 또는 인종의 남성들의 시각으로부터 얻어진 현실에 대한 이미지 보다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덜 허위적인) 사회에 대한 인식을 생산하는 것은 남성지배에 대한 여성의 투쟁을 통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은 단순히 누구든 (여성의 위치에 있다고 해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취되는 것이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남성의 지배적인 위치로부터 얻어진 왜곡된 관점 대신 여성의 사회적 경험을 생산하는 폄하된 실천으로부터 자연과 사회생활을 바라보는 지적, 정치적 투쟁을 피할 수 없다” (Sandra Harding).

“여성의 경험이 제공하는 공통점들이 여성에게 인식론적으로 우월한 입장을 제공하는가? 그리고 그 공통점들이 특정한 조건하에서 여성주의 과점을 가능하게 하는가?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 여성 또는 그 어떤 사회적 집단도 인식론적 특권을 가질 수 없다. 예속된 사회적 집단의 관점은 두 가지 사실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그들의 사회적 위치 그리고 그들의 종속적 위치에 이해서 가능한 억압에 반대하는 집단 행동을 취하게 하는 지식이 구성될 기회. 이것은 모든 억압적 사회집단에 적용될 수 있다. 지식은 언제나 매개된 지식이며, 서로 다른 해석에 노출되어 있으며 부분적이다. 바로 이러한 지식의 제한된 성격이 임금노동, 또는 지불되지 않는 가사노동, 또는 출산 등이 인식론적으로 우월한 지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다.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오히려 이러한 직접적인 경험이 성찰적인 행위자에게 구체적 삶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나 충족되지 않는 필요에 관심을 두게 한다는 것이다. 일단 이러한 관심이 주어지면, 기존에 주어진 개념적인 도구들은 일관되지 않고, 적절하지 않으며 허위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Caroline New).

하버마스적 의사소통 행위이론의 비판적 수용: 의사소통 합리성은 초월적으로 의사소통 행위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의식 (moral consciousness)의 역사적 발달에 따른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론은 이러한 초월적인 측면과 역사적인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데, 초월적인 측면을 비판적으로 기각한다면 비판적 실재론을 통해 전유된 여성주의 관점이론과 맞물려 다양한 계급적,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제출된 현실에 대한 비판이 서로 의사소통하고 그 결과로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4) 국가의 민주화, 민중으로의 권력 이양, 시장의 사회화

이론적 논쟁은 제도적 정치의 장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필자의 입장은 토론을 위한 하나의 제안이며 완결된 주장을 개진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시장의 사회화(the socialisation of the market), 정당정치와 사회운동의 결합을 통한 국가의 민주화 (the democratisation of the state)이다 (Gramsci와 Polanyi → Michael Burawoy (2004) or Pat Devine (2008 and forthcomming). 국가의 민주화와 시장의 사회화는 민중으로의 권력이양으로 귀결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정보와 지식의 재분부에 의한 능력(capabilities, Sen의 경우; capacities, Benton의 경우)의 고양이다. 능력의 제고하는 과정은 과학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이 결합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핵심적인 주제들을 미리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사회주의적 계획과 참여 민주주의 관계; 2) (사회주의적) 정치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 3) 제도정치와 탈제도정치의 관계; 4) 과학적 지식과 실천적 지식의 관계; 5) 다양한 사회운동과 그들 사의의 토론과 합의의 문제. 영국의 이론적 신좌파와 풀뿌리 사회운동, 그리고 노동당 내 신좌파 모두 위의 5가지 주제를 실천을 통해서 해결하려 노력했다. 구조와 행위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논쟁, 국가와 도시 문제에 대한 이론적 논쟁은 이 5가지 주제를 이론적으로 성찰하려 했다. 급진적 GLC는 이 주제들을 실험하기 위한 하나의 실험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출처 : 사이버NGO자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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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이야기26] '황의 귀환'설 8문8답
황우석이야기 2008/05/19 06:31   http://blog.hani.co.kr/nopd/11796


요즘 '황의 귀환'설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단순히 황우석 박사가 상업법인을 신설했다는 팩트만으로도 국내 경제지는 물론, 해외 AP통신까지 상당지면을 할애해 보도하는 양상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황의 귀환'설과 관련된 이런저런 주제를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살펴봅니다.

 

문1. 줄기세포는 말만 무성하지 실익면에서 '말짱 황'이라고 하던데?

 

내일 당장 뭘 먹고 살것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줄기세포는 '말짱 황'이겠지만, 우리나라가 '10년 뒤 뭘 먹고 살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줄기세포 연구의 가치는 막대한 재부입니다. 지난 날 줄기세포 논란으로 전 세계 줄기세포 학계가 패닉상태에 빠진 이후에도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은 자국의 줄기세포 연구를 오히려 더 큰 규모로 지원해 나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명공학분야 시장분석보고서인 Jain PharmaBiotech Report(2005)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치료제가 매년 평균 18.5%씩 성장하는 고성장 산업으로 전망합니다.(CAGR = 연평균시장성장율,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발간 '줄기세포산업 10대 육성전략' 2005.9 참조)   여기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약개발 수익이나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회적 비용의 절감효과 등을 합산하면 부가적인 파급효과는 훨씬 더 막대합니다.

세포치료시장전망.JPG


또 하나, 위의 시장전망에서 줄기세포 치료제에 버금가는 고성장 분야(연평균 18.2%)로 꼽힌 분야는 '이종이식' 분야입니다. 이종이식이란 돼지나 개의 장기를 사람의 대체장기로 이식한다는 것인데요,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요? 무균돼지 연구, 개 복제 기술 등...황우석 팀 연구의 메인 테마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황우석 팀 연구는 BT 분야에서도 고성장 분야로 꼽히는 두 가지(줄기세포, 이종이식) 이상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물론 혹독한 검증을 거치겠지만 그 팀의 복귀를 바라는 마음이야 진보가 어디있고 보수가 어디있겠습니까?


한국 언론은 더이상 황우석 논란을 과거의 공과를 따지는 소모적 논란으로서가 아니라 '미래의 재부'를 논하는 생산적 논의로서 재조명해야할 것입니다.


문2. 다른 과학자들은 '황우석' 없이도 잘 돌아간다고 하던데?


만일 그런 말을 하는 줄기세포 전문가라면 아마도 어떻게든 황우석 논란에서 벗어나 줄기세포 지원을 더 받아야하는 위치에 있거나, 황 박사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리려는 정치적 의도일 것입니다.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경쟁력,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황우석 박사가 서울대에서 퇴출당한 뒤 32인의 국내 줄기세포 전문가들이 답한 2006년 국내 기술경쟁력은,

 

 "전반적인 기술경쟁력은 60.7%, 기술수준은 65.1%으로 최고 기술경쟁력보유국인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그 격차가 큰 폭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6.12. '줄기세포 기술경쟁력 현황 및 대응전략'

 

미국의 60~65% 수준. 1등이 아닌 2,3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디지털 경쟁 시대에서 이 수치가 의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굳이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입니다.

 

윤리논란에서 자유롭고 임상시험 등 이미 실용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자평하는 성체줄기세포 분야에 대한 경쟁력 수치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일단 국내 배아줄기세포 분야와 비교해도 뒤떨어지고,(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6.12)

배아성체비교.JPG


세계 수준과는 기술력이나 격차년수에서 거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5.9 '줄기세포산업 10대 육성전략' 참조)


성체경쟁력.JPG


줄기세포 실용화를 위한 기반연구 여건이 전반적으로 뒤떨어지는 상황. 이런 여건속에서도 몇 몇 연구자들은 세계적인 성과를 도출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주변 여건이 뒤떨어진 국내에서의 연구를 고집하기보다는 기반여건이 갖춰진 해외행을 택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상황입니다.

 

한국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폭넓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이를 위해서는 '나 잘났다'식의 밥그릇 싸움보다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연구팀들의 국내 복귀를 유도해 '공존공생'할 수 있는 통큰 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문3. 황 박사팀 하나 복귀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달라집니다. 만일 연구승인을 받아 국내에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수립해낸다면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국내 연구여건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박사를 신격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수립이 갖고 있는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로서의 폭발력 때문입니다.

 

'중개연구'란 기초과학적 결과를 임상에 적용하고 임상적 관찰결과를 기초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연구로, 줄기세포 연구가 임상을 넘어 실용단계로 가기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세계줄기세포 허브가 좋은 사례로서, 한국에서 허브가 무너진 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자국에 이러한 허브를 유치해 전 세계 줄기세포 성과를 한 몫에 모으기 위해 'Centre of Excellence' 형태로 지원 혹은 계획 중입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6.12 참조)

 

예를 들어 지난 2005년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당시에도 한국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경쟁력은 미국에 비해 50~70% 수준으로 전반적으로 뒤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배아경쟁력.JPG


그런데 이런 한국에 줄기세포 허브가 개설되자 미국과 영국의 세계 최고 수준 과학자들이 앞다퉈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와 공동연구를 제안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수립되었기 때문입니다. 통상 치료용으로 수립된 세포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6~12시간 내에 병원에 배송되어야(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5.9) 원활한 임상치료가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세계 최초의 환자맞춤형 세포를 가지고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이나 이에 앞선 영장류 전임상 시험을 겨냥한 다양한 연구성과를 공유하려면 제 아무리 하버드, 캠브리지 과학자라 해도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와서 한국의 병원시설을 통해 공동연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하기에 줄기세포 논란이 터져 한국의 줄기세포 허브가 붕괴될 당시, 각국의 과학자들은 한 목소리로 황우석 팀을 질타하고 연구윤리, 생명윤리를 강조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황우석 팀이 갖고있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자신들이 수립하기위해 엄청난 물량투입과 법률개정을 통해 우수과학자 유치지원을 도모해온 것입니다. 이미 기반연구가 다 갖춰진 미국, 영국 등에서는 줄기세포만 수립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니까요.


 문4. 정부가 연구승인을 해주면 진짜로 만들 수 있나?


진짜 만들 수 있나? 아마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해하기만 할 뿐, 우리 사회는 단 한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서울대는 황우석 박사의 재현실험 기회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검찰은 100여개 배반포의 실체와 미즈메디 김선종의 바꿔치기를 확인하고도 지리한 법정공방 중이며, 정부는 황우석 팀의 연구승인 요청에 대한 답변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과학을 과학으로 검증할 기회조차 주지않고서 몰매만 때리던 지난 3년간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이처럼 과학검증의 길이 막혀있는 가운데, 지난 공판과 토론회, 언론 보도 등 공신력있는 관련 전문가들의 언급은 다음과 같습니다. 알아서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회주어지면) 100% 만들죠. 일단 배반포 단계까지 가면 어떤 난자를 썼느냐 소스가 문제이지 줄기세포 만드는 발달단계는 (냉동배아나 체세포핵이식 배아나) 똑같습니다.  물론 체세포 핵이식의 경우 핵 제거과정에서 일부 세포질이 딸려나오고 그런만큼 내부세포덩어리도 일반 수정란에 비해 약간 (건강도가) 부족할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만 다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건강도만 입증되면 능히 줄기세포는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제주대 박세필 교수,2007.10.9. '올바른 생명윤리법 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 중


"배반포 상태만을 봤을 때 줄기세포를 수립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미즈메디가 아니라) 자신들이 배양업무를 맡았더라면 최소 (줄기세포) 2~3개는 수립했을 것이라는 다른 전문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 검찰측 증인으로 출석한 차병원 이동률 교수 등이 황우석팀 배반포 사진을 판독한 뒤, 2007.5.15 제11차 공판


"황우석 박사 팀이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 복제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견류(犬類)의 복제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이다"  "황 박사는 재연구를 통해 자신을 입증해 보여야 한다" - 영국 런던대 줄기세포생물학연구소장 스티븐 밍거 박사, 2007.1.19. LST미디어에 소개된 영국내 싱크탱크 발표내용)


"황 교수가 연구를 재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황 교수처럼 체세포를 이용해서 10% 수준의 핵치환 배반포를 얻는 것은 인간 핵치환 연구분야에서 엄청난 업적" - 당시 영국 뉴캐슬대 스토이코비치 박사, 2006.1.14.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즈와의 인터뷰, 동아일보 보도.

 

"(황우석 팀의) 사람 난자에서 핵이식을 통한 배반포 형성 연구 업적과 독창성은 인정되며 관련 지적재산권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 서울대 조사위원회 최종보고서, 2006.1.10. p40.

 

 문5. 정부 지원 다 몰아주고 난자 다 몰아줘서 그런 성과 얻었던 것 아닌가?


정말로 당시 정부가 다른 전문가들 무시하고 황우석 박사팀에게만 연구지원을 몰아줬던 것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고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표는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당시 참여정부 각 부처(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식약청, 교육인적자원부 등)에서 지원된 160개 R&D과제에 대한 지원액 현황 분석자료입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5.9 참조)    


배아성체연구비포션.JPG


 지원액으로 보나 과제수로 보나 배아줄기세포보다는 성체줄기세포 쪽이 훨씬 더 많은 정부 지원을받았습니다. 황우석 팀의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는 전체적인 파이가 커져서 배아쪽이나 성체쪽이나 전년도보다 훨씬 많은 과제를 맡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비율면에서 성체쪽 과제가 여전히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면 배아줄기세포 쪽 정부지원은 모두 황우석 박사팀에게 들어갔는가? 3년간 배아분야 지원액 분배를 보면 동물줄기세포응용기술>분화유도>조직재생 순으로 들어갔으며 줄기세포 확립 및 배양기술은 전체의 11.6% 수준이었습니다.  

배아줄기세포연구지원액분포.JPG


 그러면 우리나라 정부가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줄기세포 분야에 쏟아부었던 것인가? 미국, 영국 등 줄기세포 강대국을 포함해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 우리 눈에는 '별볼일 없어보이는' 나라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어느 정도 정부 돈을 쏟고 있는지 비교해본다면(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6.12. 참조), 우리 나라 과학자들...정말 애국자들이라는 생각이 절로 나옵니다.  


  한국 :  정부 약 2,650만 달러 ('05)

 

  미국 :  NIH 통해 5억 6,800만달러('06), 캘리포니아주 10년간 30억달러 지원예정('05)

             뉴저지주 1,150만 달러('05),  코네티컷주 10년간 1억달러, 일리노이주 1억달러 지원계획

 

  영국 :  영국줄기세포은행통해 6,900만 달러('04), 영국정부 등 4,130만 달러('04)

 

  일본 :  문부과학성 연간 1,730만 달러, 이화학연구소 발생생물학센터 4,500만달러('04)

 

  캐나다 : 연간 3,200만 달러 (Stem Cell Network 추정)

 

  호주 :  정부 4,355만 달러('02), 모나쉬 대학 호주줄기세포센터 5천5백만 달러('06~'11)

 

  싱가폴 : 공공분야 연간 4,000~4,500만 달러, 민간분야 연간 2,500~3,000만 달러

 

  중국 :  정부 4천만 달러

 

지난 날 황우석 박사팀이 세계적인 성과를 냈을 때 해외 과학자들은 '믿을 수 없다' '난자 많이 써서 그랬을 것이다'라며 놀라움을 표현했습니다. 당연합니다. 자기들보다 돈도 적게 받고, 연구인프라도 열악한 한국같은 나라에서 자신들을 앞서가니 자기 나라 정부에 대고 뭐라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도 난자 많이 받으면 저렇게 할 수 있어'라고 할 수 밖에요.

 

 문6. 줄기세포 수립하더라도 당장 실용화되는 것은 아니라던데..


미국의 섀튼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발표된 뒤 '한국에서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바이오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언론에 말했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을 거점으로 하는 세계줄기세포 허브를 설립하고 자신이 이사장직을 맡으려 했습니다.(2008.4.8 공판 중 안규리 교수 증언참조) 단지 줄기세포를 만들었을 뿐인데 왜 이런 호들갑을 떨었을까요? 그것은 줄기세포 실용화 단계까지 연구하는 것 자체가 '바이오 클러스터'로 산업화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상시험 결과가 좋게나온 뒤에는 이미 버스 떠난 것이고 그런 결과를 내기위해 전 공정을 세팅하는 자체가 황금알을 낳는 산업화라는 것입니다.


한 BT분야 시장보고서가 내놓은 세포치료기술 전망에 따르면 체세포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현재로는 중간단계 역할을 하면서 2010년 이후 주요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봅니다.(보건산업진흥원 2005.12 참조)


세포치료술전망.JPG


멍석은 우리나라가 깔아주고, 그 위에 전 세계에 모인 과학자와 기술, 돈이 실용화 단계를 향해 나아가며, 결국 이를 통해 취약한 국내 BT인프라가 레벨업되고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한국의 병원은 슈퍼맨이나 마이클 제이폭스를 비롯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전세기를 타고 찾아오는 세포치료의 메카로 자리잡게한다는 꿈이었습니다.  


장미빛 환상?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웃 일본만 봐도 고베 시에 '재생의료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침체된 지역경제를 복구하고 고령화 사회 의료복지의 질 제고를 목적으로 인공 섬을 조성, 이곳에 첨단연구단지와 병원, 각종 부대 시설 등 재생치료와 관련된 연구와 생산, 소비시설을 한 공간에 집적시킨 공간입니다. 공항과 인접해 국내외 치료여행객을 맞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고베클러스터.JPG

      ▲ 일본 고베 재생의료 클러스터 (www.city.kobe.jp/cityoffice/06/015/iryo/index)


이런 의료 클러스터를 통해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것은 대학병원과 의료진입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9개의 바이오 클러스터가 있는데, 이 가운데 보스톤 바이오 클러스터에서는 매사츄세츠 종합병원(MGH) 이 바이오 연구와 실용화를 이끌며 MIT, 하버드를 능가하는 특허보유 기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한국보건산업진흥원, 2005.12 참조) 


결국, 황우석팀 연구의 종국적인 최대 수혜자는 병원과 의과학자, BT 분야 젊은 과학자들, 그리고 클러스터를 유치할 대학과 정치인, 지방자치단체였던 셈입니다. 이런 꿈이 통째로 날아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가장 모질게 황우석 팀을 짓밟은 이들은 의사, 젊은 과학자, 대학이었습니다.


 문7. 어차피 배아줄기세포는 윤리논란이 심해서 문제 아닌가?

 

과학과 윤리의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국익을 위해 나아가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집요하게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해왔습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온 곳이 바로 미국입니다. 7년간 배아줄기세포 관련 국가별 연구논문수 단연 1위는 미국입니다.(PubMed quest(1998-2005), Anke Guhr, Andreas Kurtz & Peter Lser 참조)  

배아논문경쟁력2.JPG


 논문 숫자만큼 돈도 많고 과학자도 많고 집적된 특허기술도 많은 미국입니다. 이제 이번 대선만 끝나면 누가 당선되든 연방정부 차원의 배아줄기세포 지원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논문 숫자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나라는 이스라엘입니다. 한국에서도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가는 곳이죠. 그런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은 일찌감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선두주자로 나서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 다음 한국과 함께 미국을 뒤따르는 나라가 영국입니다. 영국은 잘 아시다시피 세계 최초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정부차원에서 허용한 나라입니다.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에게는 불임시술 비용 일부를 감해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반인반수' '키메라'라며 펄쩍 뛰는 동물-인간 간의 이종간 배아연구를 자국 과학자들의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열어준 나라가 영국입니다.


이들 나라는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는 비윤리적인 국가들이 아닙니다. 더구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생명윤리법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는 이상, 난치병 치유를 위한 소중한 과학연구라는 공감대가 우리나라에도 폭넓게 형성된 시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특정 종교 지도자들은 로마 교황청의 확고한 입장이 있는 이상 지난 날의 오류를 과장, 부각시키며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를 일관되게 반대하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중세로마도 아니고 이보다 더 강력한 것은 사회적 합의, 국민적 합의 일 것입니다.


 문8. '황의 귀환'은 또 다른 논란의 시작 아닌가?

 

더이상 논쟁하고 까발릴 시간이 없으리라 예측됩니다. 그렇게 또 소모적인 싸움판을 만들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국민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인 Gartner Group이 내놓은 'Hype cycle'(과대광고 곡선)은 언론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이용해 신기술의 상용화 단계를 예측한 곡선입니다. 신기술은 5가지 단계를 거쳐 상용화되는데, '방아쇠 당기기' ▶ '기대심리의 폭발' ▶  '깨져버린 환상'  ▶  '깨달음의 시간' ▶  '생산성의 고원'의 과정입니다. 이 곡선을 그동안 황우석 팀 연구의 부침과 비교해보면 신기하게도 딱 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과대광고곡선2.JPG


'깨져버린 환상' 그 다음 단계는 언론의 무관심 속에 정말 신기술의 가치를 인정한 관련 전문가들이 조용히 수익모델을 탐색하고 상용화를 모색하는 '깨달음의 과정'입니다. 지금이 아마 그 단계라면 최근 황우석 박사의 상업법인 설립은 의미있는 결정일 것입니다. 그 뒷단계는 본격적인 시장이 열리는 '생산성의 고원' 단계입니다. 그 단계에 남보다 한발 앞서 도달하기 위해 지금도 전 세계 BT 분야 과학자들은 분초를 아껴가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연구승인을 신청하고도 연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줄기세포 연구입니다. 우리는 줄기세포 연구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깨달음이 끝내 외국에서 열리는 것을 봐야하는 것인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연구승인'을 허락해 국내에서 합법적인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연구가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 3년 간, 조금이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국회가 생명윤리법 개정안에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줄기세포 논란 이후 일부에서는 아예 국내에서는 그 연구를 못하도록 '못박는' 방안을 추진해왔지만 결국 우리 국회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윤리법안을 마련했습니다. 이제 연구만 진행되면 됩니다.


지난 3년 간, 조금이라도 얻은 것이 있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줄기세포에 대해 많이 알고 큰 관심을 가진 국민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국민의 줄기세포 전문가화. 이것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는 한 논란의 불씨가 되겠지만, 연구가 이뤄진다면 세계 모든 과학자들이 부러워할만한 연구환경으로 순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연구승인'을 바랍니다. 과학은 과학으로 검증해야 하며, '황우석 논란'은 이제 과거지사가 아닌 우리의 미래가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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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에게서 배워야 할 점
빌 게이츠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도 경제 불균형과 양극화의 장애를 극복하려면 창조적 자본주의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수의 가진 자를 대변한다는 소리를 듣는 정권이 특히 경청할 일이다.

[35호] 2008년 05월 15일 (목) 16:17:45 장영희 전문기자 cool@sisain.co.kr

그 가 왔다. 7년 만의 방한이다. 단 한번도 직접 만난 적이 없고, 심지어 말 한마디 섞은 적도 없건만, 필자에게 그는 애정 어린 관찰 대상이다. 아니 사유체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갔다. 체류 시간은 5시간이 채 안 됐지만.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라는 본명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빌 게이츠 회장이라고 하면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터. 33년 전 고교 선배인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이래 그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IT(정보기술) 세계의 변화를 예견해왔다. <빌게이츠@생각의 속도> 같은 저작들로 그의 생각을 읽은 이는 국내에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회사 그만두면 자선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

이 번 방한에서 ‘디지털의 다음 10년’이라는 주제로 그가 던진 메시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소프트웨어의 혁신 등으로 지난 25년 동안 컴퓨팅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앞으로 10년은 앞서 10년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변화가 몰아닥칠 것이라는 게 그의 예견이다. 이른바 ‘제2디지털 시대’에는 사용자가 컴퓨터와 인터랙티브(상호작용)하는 환경이 키보드에서 음성인식 등으로 바뀔 것이며, 타블릿 PC와 터치스크린 같은 단말기가 주요 도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쉰세대’에 가까운 필자로서는, 진짜 쉰이 넘는 빌 게이츠 같은 선각자는 예외이겠지만, 현기증이 나게 격변하는 디지털 환경을 아이들을 통해 실감하곤 한다.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하기가 일상이 돼버린 아니 숨쉬는 일과 비슷한 그들과 의식적으로 작업의 도구로써 컴퓨터를 만났던 필자와는 이른바 생래적 조건이 달랐다. 그가 말하는 디지털의 미래상을 애써 머리로 이해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그를 가슴으로 받아들인 대목도 물론 있다. “자신이 성공한 이유가 마을 도서관의 책 때문”이며 “자신의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기 앞서 책을 사주겠다”라는 그의 말에 무릎을 쳤다. 큰아이에게 빌 게이츠가 거론한 이유를 인용하며 큰소리친 적도 있다. “인류가 글쓰기와 글읽기보다 정보를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도구를 아직까지 만들어내지 못했다”라고 말이다. 사실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는 10대에게 먼저 책 속에 빠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닌 많은 부모의 바람일 터.

그런데 필자가 정말로 그에게 꽂힌 것은 그의 창조적 자본주의와 자선으로 대표되는 부에 대한 생각이었다. 서른한 살 나이에 역사상 가장 어린 억만장자가 된 세계 최고의 부호이지만 그는 이미 몇 해 전 재산의 90% 이상을 세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지난해부터 기업이 단순한 사회 책임에서 나아가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세계 10억명의 빈민을 돕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역설해왔다.

그런 빌 게이츠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스승이 된다고 한다. ‘국제 자문위원’(Global Advisor ) 위촉을 수락했으니 그는 이제 대통령의 ‘나라 밖 스승’이다. 그는 5월6일 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이 경제 불균형과 양극화의 장애를 극복하려면 창조적 자본주의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한국도 양극화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어떤 일을 할지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오는 7월) 회사를 그만두면 자선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부자나 기업을 찾아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씀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이들에게도 돈을 얼마나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는 게 중요한지 가르쳐주고 기술이 가난한 사람의 삶의 질을 어떻게 향상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내 생애를 바칠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의 자문을 경청하고 실천에 옮기기를 바란다. 가뜩이나 소수 가진자를 대변한다는 비난을 받는 정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