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가와 관가에 화제를 일으켰던 책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저자 정승일 국민대 교수가 "지금 우리 사회 양극화의 책임은 민주 인사들에게 있다"고 밝힌 뒤,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박정희식 국가개입모델의 대안을 반대 극단에서 찾으려한 나머지 시장주의에 매몰되고 말았다"며 "그 가장 극단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1월 1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진행 김어준, 저녁 7시5분-9시)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민주화된 정권이면서도 가장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이 민주화가 시장화이며 세계화라는 심각한 오류에 빠져 우리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결국 민주화마저도 위기에 놓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장하준 영국 켐브리지대 교수와 정승일 교수가 대담을 벌인 책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수차례 언급하면서 유명세를 탄 바 있으며, 최근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 책을 참고해 밝힌 '재벌론'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이하 방송 내용 전문 ===========> ▶ 진행 : 김어준
▶ 답변 : 정승일 국민대 교수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최근 '양극화'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왜 그런가요? 양극화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란 세계화 물결이라고 할 수 있죠. 가령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니까 농민들이 옛날보다 더 못살게 되니까 시위를 하고,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중소기업 하기게 더 힘들어졌고, 투자도 잘 안되고, 섬유회사나 가구회사 등 내수시장을 겨냥한 회사들은 더 힘들어졌죠. 그 배경엔 모든 걸 시장논리, 경제논리로만 하자는 지배적인 담론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우익들은 전통적으로 시장에 맡겨놓으면 시장이 다 알아서 해결해준다는 고전적인 시장주의자인 것처럼 말해왔는데요? 우리나라의 보수를 자처하시는 분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찬양하는데요, 오히려 박정희 대통령은 시장에 모든 걸 맡긴 게 아니라 정부가 엄청나게 시장에 개입해서 재벌을 키우고, 은행을 국유화 시켰죠. 국가주의자였지, 시장주의자가 아니었죠. 어떻게 보면 시장에 모든 걸 맡겼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구요. 그 시발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민주화를 하면서 시장화를 시작한 것이죠. 소위 세계화 정책을 들고 나왔는데요.
그 당시 세계화는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긍정적이었는데요? 한편으론 좋았죠. 가령 배낭여행이나 해외유학이 자유화 되는 등. 하지만 그바람에 은행이 대규모로 외국에서 돈을 꿔올 수 있게 됐고, 그 돈으로 재벌들이 과잉투자를 하게 되고, 그 상태에서 외국자본이 갑자기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가 터졌거든요. 그런 점에서 1993년 김영삼 정부가 펼쳤던 세계화 정책이 외환위기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뭘 잘못한 겁니까? 민주화가 반드시 시장화는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장이란 자본주의 시장경제이고, 시장경제가 자기 맘대로 돌아간다는 건 자본주의적 관계가 훨씬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돈있는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고, 돈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시장논리거든요. 그게 전세계적으로 확장되어서 돈있는 선진국은 더 잘 살게 되고, 돈없는 나라는 더 못 살게 되었죠. 이게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세계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박정희 정부의 잘못된 국가주도형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 세계화와 민주화와 동일시하는 잘못된 시각이 생겼습니다.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지는 세계화, 시장화의 논리를 민주화의 논리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외환위기의 원인도 박정희 체제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잘못 진단하게 됐고, 그래서 외환위기가 터지자마자 김대중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가 더욱 시장에 모든 걸 맡길 것을 주장해서 상황은 더욱 심화됐고, 보다 더 민주화된 노무현 정부가 보다 더 시장적인 정책을 펼치니까 빈부격차가 더 심화되고 중소기업은 힘들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양극화 문제를 뭔가 상당히 착각하고 있고, 경제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를 같은 것으로 보면 안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예를 들어 소버린과 같은 외국투기자본이 국민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금융시장에 개입합니다. 그건 일종의 정부개입인데요. 만약 시장자유주의적인 논리로 행동한다면 소버린에 대해 아무런 제재를 하면 안되죠. 제재 자체가 국가적 개입이고, 아직도 그걸 박정희식 개입이라고 비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가장 작은 정부가 가장 아름답고 민주화된 정부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민주화된 정부일수록 시장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행위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세계화라고 말하는 건 이미 부자인 나라에서 자기들의 물건을 쉽게 팔기 위해 자유도를 높이라는 것이고, 우리는 거기까지 못갔는데 맞춰주다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군요? 그렇죠. 예를 들어 지금 농산물 시장 문제를 보면요. 우리나라 쌀 생산비가 높은데, 정부의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그저 시장논리에만 맡겼을 경우 우리나라 농사꾼들은 살아날 방법이 없죠. 농민들도 국민의 한사람이고, 민주적인 정부에선 어떻게 이 국민들을 민주적으로 보호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농산물 시장도 가능하면 늦게 개방해야 하고, 개방하는 과정에서 우리 농민들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합니다. 삼성전자라든가 현대자동차 등 우리나라 대기업이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댓가로 중국이나 칠레 등에 공산품을 더 팔 수 있지만 그만큼 농민들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농민들에게 피해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금도 많이 걷어야 하고, 그렇게 세금 많이 걷으려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거니까, 시장에 마음대로 맡겨두면 안된다는 거죠.
우리 사회의 좌파나 진보적인 정치인사들이 우익의 경제논리에 대체로 수긍하거나 경제를 잘 몰라서 그랬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우리나라의 진보개혁이라는 분들이 시장경제의 논리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구요. 알고 계시면서도 고의적으로... 예를 들면 재벌들은 편법상속, 정경유착 등 굉장히 불투명하고 문제가 많죠. 근데 이런 현상들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라 후진국의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거기에 비해 선진국 기업은 투명합니다. 근데 만약 우리가 투명성이나 선진적 경영입법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을 다 투명하게 경영하는 외국에 팔아버려도 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비록 불투명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을 키워내는 것이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고, 복지에 도움되는 세금도 더 많이 내게 할 수 있죠. 세계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돈 가진 사람들이 자기 돈을 국내나 국외에 마음대로 투자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돈의 움직임이 세계화 되었을 뿐이지,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음대로 미국으로 이민 못가잖아요. 한마디로 노동시장은 세계화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돈 가진 사람들이 아무 데나 투자할 수 있는 '금융세계화'라는 거죠. 상당히 제한된 세계화입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이 땅에서 계속 살아야 할 사람들이고, 우리 기업 역시 계속 한국적인 마인드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국적이 있는 거죠. 이런 국적 있는 기업들을 함부로 해외에 매각하면 안되는 거죠.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전부 개방되어서 상장기업 대부분이 외국인의 주식투자를 받고 있는데요, 이게 한편으로는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식투자자들이 원하는 걸 해줘야 한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외국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국내투자분을 다 팔아버리고 다른 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 대한 애정이나 기여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죠. 이런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이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97년 이후로 개혁해왔고, 이런 개혁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비정규직을 늘려왔고 투명성을 높여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투명성 요구를 듣다 보니까 기업들은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일자리 창출이 안되어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청년층에서 오히려 보수층을 지지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겁니다. 전 그런 현상이 상당히 우려되구요, 지난 80년대 민주화를 추구했던 민주인사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를 강조할수록 실제로는 정부 역할이 강조되어야 하고, 금융시장과 사회시장이 보호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투기세력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기업들이 장기투자를 할 수 있고, 그만큼 우리 노동자들의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게 소위 '소액주주운동'이라고 하죠. 말로는 소액주주운동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소액이라는 게 스몰머니, 액수가 적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주식시장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층이 글로벌 펀드들인데요, 이 글로벌 펀드들은 운영규모가 수십억 달러에서 수천억 달러입니다. 근데 이런 경우에도 소위 '한바구니에 계란을 다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원칙을 지키기 때문에 글로벌 펀드들이 개별 기업에서는 5% 이상을 갖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들은 소액주주입니다. 소액주주운동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층이 이 글로벌 펀드들입니다.
시민단체들이 재벌개혁의 수단으로 추진하고 있는 여러가지 운동에 대해서 비판적이시군요? 예. 저는 비판적입니다. 시민단체들이 해나가는 소액주주운동이 우리나라 재벌의 가장 큰 문제점, 예를 들어 투명성이라든가 정경유착 등을 혁파시키는 데 있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운동은 주식투자자들의 이해관계와 결합됐고, 그런 의미에서 외국 자본의 금융시장 침략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더군다나 그런 역할들을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로 포장해버렸고, 그런 과정에서 우리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역할을 쇠퇴시켰다는 점에서 굉장히 안좋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정리해보면, 우리나라 민주화 세력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주체를 그대로 시장에 내버려두는 것이 같다는 오류를 범했고, 재벌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시민단체가 했던 일은 글로벌 펀드들이 우리나라에서 쉽게 활동할 수 있도록 결과적으로 기여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정부는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 은행들이 지난 5년간 가게대출, 주택담보대출을 엄청나게 늘여왔습니다. 그게 부동산 투기로 이어졌고, 정부가 아무리 세금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거품을 멈출 수 없었고, 그래서 정부가 극약처방으로 지난 8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을 강제로 막아버렸습니다. 정부가 자유시장에 개입해서 정치적인 논리로 시장경제논리를 막아버린 거죠.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굉장히 잘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 정부가 이제야 비로소 민주적인 힘을 발휘해서 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주식시장 투자자들이 시가차액을 얻었을 경우 양도소득세를 당연히 물어야 합니다. 근데 우리나라는 주식에서 차액을 얻었을 경우에도 아무런 세금을 내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을 살리기 위해서지요. 이건 굉장히 우려되는 현상입니다. 가령 2년전 들어왔다가 올해초 빠져나간 소버린이란 펀드가 있는데요, 이 소버린 펀드가 2년간 투자한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에 기여한 바가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이건 우리가 잘못한 거죠. 소버린은 그런 약점을 뚫고 들어온 거구요.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투기성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높은 나라에 속하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본업은 제쳐둔 채 주식투자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건 경제적인 낭비입니다. 민주화된 정부일수록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재벌은 어떤 부분을 개혁해야 할까요?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단, 그걸 갑자기 바꾸라고 하면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붕괴되고 재벌그룹이 해체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체된 그룹을 외국자본이 인수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국민경제를 고려하면서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시민단체는 어떤 걸 주장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공정한 경쟁, 완전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경제정의를 주장하는데요. 실제로 우리나라가 도입한 금융제도가 미국제도인데, 미국을 제외한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오히려 금산분리가 엄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들이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가 덜하구요. 따라서 우리가 재벌 체재를 전부 비판하고 해체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긍정적 측면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투명성 결여나 편법증여 등 부정적인 측면을 고쳐나가면 된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경제에서 재벌개혁보다 더 중요한 건 양극화 해소입니다. 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재벌의 투자 능력이나 자금력 등이 정말 도움 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우선순위가 다른 거군요? 재벌개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고. 그렇습니다.
▶진행: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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