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시각] 김정일의 목적은 경제에 있다
surfing log/경제사 2007/08/19 13:07 |차오위즈(喬禹智) 베이징대 조선경제연구실 주임
입력 : 2007.08.15 22:43
- ▲ 차오위즈(喬禹智) 베이징대 조선경제연구실 주임
왜 북한은 5년 동안이나 참여정부의 정상회담 제안에 대해 소극적이다가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돌연 ‘주동’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했을까. 서울에서는 금년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라고들 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북한이 역풍을 맞을지도 모르는 그런 일을 시도할 정도로 어리숙하지는 않다. 국가보안법 폐지, 김일성 주석 묘지 참배 제한 폐지, 북방한계선(NLL) 재설정 등등의 설도 있다. 물론 일리는 있고 정상회담의 기회를 빌려 그런 일들이 추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슈는 실무자 선에서 논의할 사안들이지 ‘통 큰’ 지도자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다룰 사안은 아니다.
핵 폐기 논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설도 있으나 나중에 공동 발표문에서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천명하는 정도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핵 폐기 논의는 6자회담이라는 틀도 있고, 또 평화체제는 미국과 의논할 일이지 남북 사이에 의논할 일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북한의 기본 입장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주동’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한 목적은 두 가지다. 외부적으로는 정상회담을 통해 이제 막 해빙 무드로 들어선 북·미관계 개선에 동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남북 정상회담을 이슈로 내세워 2002년 제2차 핵 위기 이후 안보 환경이 악화되는 바람에 위축돼 온 개혁파에 힘을 실어 주어 5년간 정체되어 온 경제개혁을 다시 추진하자는 것이다. 안보와 개혁 사이에는 안보 환경이 개선되면 국내 개혁파가 득세할 수 있게 돼 개혁이 추진되고, 안보 환경이 악화되면 보수파가 득세해서 개혁은 정지되는 함수관계가 존재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1960년대부터 40년 이상 안보 위협에 시달려 왔다. 1960년대 중국과 구소련의 관계가 나빠지자 안보 위기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 만든 것이 주체사상이고, 선군(先軍)정치가 태어난 이유도 바로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의 안보 위기였다. 선군정치를 쉽게 풀이하면 ‘경제가 어렵더라도 안보의 기둥인 군대에 우선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데 대해 인민들이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안보 환경의 개선은 경제정책의 변화와 개혁으로 연결돼 왔고, 안보 환경의 악화는 개혁정책의 정지로 연결돼 왔다. 절대적인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개혁을 추진하고 싶어도 안보 환경이 악화된 상태에서는 개혁을 추진할 수가 없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문화혁명 기간에 경제 상황이 혼란에 빠지자 ‘개혁파’인 덩샤오핑(鄧小平)을 잠깐 중용했다가 또다시 좌천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의미로 보면 북한에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당사자이다. 1984년의 합영법 제정도 1983년의 중국 방문 이후 김 위원장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이루어졌고, 지난 2002년의 이른바 ‘7·1조치’도 김정일 위원장의 ‘신사고(新思考)’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그동안 미뤄 오던 경제개혁 조치를 진행하려 할 것이 틀림없다. 남북 경제 협력도 한 차원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한국은 남북 경제 협력을 하더라도 북한 중앙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북한 중앙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경제개혁을 유발하기보다는 중앙집권적 경제제도를 강화하게 만드는 역작용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북 경제 협력은 북한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새로운 경제 운영 시스템의 정착을 겨냥한 포괄적인 마스터플랜을 한국이 세워 주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